35.3 F
Dallas
화요일, 1월 7, 2025
spot_img

[안광문 목사] 믿음과 인내로

안광문 목사
생명샘교회 담임

히브리서는 원래 편지로 쓰여진 글입니다. 모든 편지는 발신자 있고, 수신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히브리서도 발신자와 수신자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히브리서 발신자가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수신자는 이방지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로 기독교로 개종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이 이분들을 가만 놔두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는 이단이다. 유대교가 정통이다. 이단에 빠져서 그러지 말고 유대교로 돌아와라.” 회유하고 유혹합니다. 그래도 안 되니까 협박하고 핍박도 합니다. “너희와는 거래하지 않겠다. 앞으로 여기 와서 장사 못한다. 앞으로 여기서 물건도 못 산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포기하고 유대교로 돌아가고자 하는 배교의 위기에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히브리서를 썼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에는 이에 대한 경고와 격려의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믿음과 인내로 약속을 상속받는 사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히 6:12) 이 말씀도 격려를 위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은 종교적인 의미의 믿음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동의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관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나에게 있어 예수님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에 대한 생각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 말씀에 대해 동의한다. 예수님 믿고 천국 간다.” 물론 맞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고 그분을 신뢰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분 말씀에 순종해서 산다.” 믿음은 흔들림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신앙적 삶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제일 믿기 힘들었던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말씀하지만, 학교에서는 45억 년 전 태양에서 분리돼 우연히 지구가 생겼고, 우연히 아메바가 생겼고, 진화하다가 우연히 사람이 됐다고 가르쳤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씀보다 진화론이 더 과학적이고 더 합리적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동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하다 보니 모든 것이 우연히 됐다는 말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계신 게 맞는 것 아닌가?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이 맞지 않나?”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집사람 – 그때는 결혼하기 전이었습니다. -이 저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누군가를 – 오랜 되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 따라서 창조과학회 세미나에 갔다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문제를 해결하게 됐습니다. 요즘 창조과학회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많지만 최소 저에게는 고마운 곳입니다.
제가 군에서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하기 전에 목사님 권유로 우연히 중고등부 수련회 보조교사로 따라갔습니다. 집회 중 – 특별한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늘상 듣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 성령께서 제 마음을 만져 주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씀이었는데, 그때 제 마음속에는 처음으로 “예수님께서 바로 나 때문에 죽으셨구나. 제가 죄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는 저를 위해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인내”는 “확고 불변” 즉,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인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어 주실 것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브라함처럼 인내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인내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면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 때문에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개인적인 관계와 거기서 오는 흔들림 없는 신앙적인 삶, 그것 때문에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인내하고 있다는 것은 그분에게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과 인내는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인내를 가능하게 하고, 인내는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은 동의하고 인정하는 데서 끝나고 거기서만 머물러 있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 예수님과 개인적 관계를 가지는 것이고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게 마음먹고, 결단해도 또 흔들립니다. 흔들리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 흔들리고 또다시 시작하고, 그러면서 점점 흔들리는 것이 줄어들고, 넘어지는 수가 줄어들고, 그러면서 결국에 흔들림 없는 믿음과 흔들림 없는 삶을 향해서 가는 신앙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최근 기사

이메일 뉴스 구독

* indicates requ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