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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월 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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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수 목사] 말씀이 영혼의 귓가에 들려지도록

전남수 목사
알칸사 제자들교회 담임(2003-현)
경북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B.A/M.A)
고려신학대학원 졸(M.Div)
Missionary Baptist Theological Seminary(Th.M)
Houston Graduate School of Theology(D.Min)
Central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겸임교수

성경은 예배가 회복된 사람들, 예배의 거룩함을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축복으로 가득합니다. 예배자 히스기야도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자로서 성전을 중심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엄청난 신앙의 개혁적인 일을 행한 사람입니다. 그는 국보 1호라고 말할 수 있는 모세의 놋뱀을 ‘느후스단’ 즉 ‘쇳덩어리’일 뿐이라면서 부수어 버립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백성들이 그것을 우상처럼 받들어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산당을 제거했습니다. 산당을 제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 한국의 서원이나 향교처럼 그 당시에 정치지도자들이 자기의 은신처로 여겼던 그런 것인데, 그것을 파괴해 버린 것입니다. 가만히 두면 조용할 일을, 애써 분란거리를 만든 것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정말 대단한 사람임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면, 어떤 일이라도 막 밀어 부치고 일을 막 저지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세의 놋뱀이 어떤 것입니까?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불평 중에 물을 찾다가 불뱀에 물려 죽게 되자,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보는 사람마다 생명을 얻었다는 증거물입니다. 얼마나 귀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모세는 그런 엄청난 가치를 가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놋뱀을 단번에 해치워 버린 것입니다. 쇳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한방에 부숴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가치가 있고, 사람들이 좋아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고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지 않으면, 헛된 것임을 강력하게 선포한 것입니다. 게다가, 산당을 제거하니까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에게는 사람의 생각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가 어디를 가든지 형통케 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당대의 패권주의자였던 앗수르의 왕에 대해서도 선대의 왕들과 달리, 전혀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개혁적인 일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의 귓가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졌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기준이 되니, 그는 세상 앞에 두려울 것이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왕하18:5), 하나님과 연합하고(18:6), 하나님과 함께(18:7)”했다고 합니다.
히스기야 왕의 배경은 그런 신앙의 조건이 되지를 못합니다. 히스기야 앞에 왕은 누굽니까, 아버지가 누구입니까? 아하스입니다. 이 아하스는 히스기야의 형제 중에 한 사람을 잡아다가 인신 제사를 드릴만큼 아주 극악무도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자란 배경이 좋지 못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 밑에서 악한 일들을 보며 자란 히스기야가 어떻게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형통한 은혜를 누리게 되었을까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 이유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연역적으로 이 문제를 들여다보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의 행한 일들을 평가하는 성경의 내용은, 그가 분명한 신앙적인 말씀의 기준을 가지고 이를 지켰다고(왕하 18:6) 합니다. 이것은 이미 그의 마음판에 말씀이 새겨져 있었음을 뜻합니다. 누가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주었을까요?
그의 귓가에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이 어떻게 들려진 것입니까? 전하는 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악한 시대 가운데 하나님은 늘 말씀의 종을 예비하시는데, 당시에 누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종 이사야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공식처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웃요아히,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들의 시대는 이사야 선지자가 있었으며,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들이 그를 통해 이스라엘에 증거되고 왕들에게 교훈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히스기야왕의 귓가에 이사야 선지자의 음성이 들렸을 것인데, 악한 왕 아버지 아하스의 일을 목도하면서 그에게는 더 크고 선명하게 들렸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듣는 자는 살아난다고, 영적으로 죽은 환경 같은 아버지 밑에서도, 말씀을 듣고는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의 말씀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위기를 만날 때마다 그는 이사야에게 기도부탁(왕하19:2)을 하는 것을 보면, 그가 그를 크게 의지했음을 알게 합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말씀의 기준이 분명하니, 세상의 일들 앞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쁨되는 일을 향해 직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열왕기하 18장 2절에 보면, 그의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누구라고 했습니까? 스가랴의 딸 아비야를 말합니다. 스가랴의 딸, 이 스가랴는 선지자이면서 제사장이었던 스가리야를 말합니다. 스가랴의 딸이라는 말이 규정되어 있고 그 이름이 아비야라고 특정해서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어머니의 신앙과 삶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신실한 외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 아래 자라면서 말씀을 들었고, 이를 통해 그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개혁적인 일들을 힘있게 감당했던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는 왕으로서 엉터리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엉터리 같은 아버지 밑에 살아도, 말씀의 선생님과 엄마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말씀을 마음에 새겨주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이 선명한 아이로 자라게 되었고, 이것이 그가 왕이 되고서도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왜 술을 못 끊느냐? 우리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이기 때문에 내 몸에는 피가 아니라 알코올이 흐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게 핑계입니다. 또 부모가 날 뒷받침하지 못해서 내가 인생을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핑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직 한 가지가 필요할 따름입니다.
히스기야처럼 그 귓가에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될 때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영혼의 귓가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면 됩니다. 부모로서 부족하고 연약합니까? 괜찮습니다. 자녀들의 귀에 주의 말씀이 들려지도록 주의 교회에 붙여주시면 됩니다. 마침내, 가정 가문 자녀들이 함께 살아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말씀으로 살아난 가정과 자녀는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자신과 공동체를 복되게 하는 존재로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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