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대 초반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노안이 찾아왔을 때의 일입니다. 눈이 뻑뻑하고 눈물이 계속 나와서 안과를 찾았더니, 의사 선생님은 노안이라며 다초점 안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코스트코에 가서 급히 안경을 맞췄지만, 막상 착용해 보니 세상이 온통 비뚤어 보이고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을 만큼 어지러웠습니다. 결국 눈과 머리의 통증을 견디지 못해 정말 필요할 때만 가끔 쓰고 안경을 2년 가까이 방치해 두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냥 한번 써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안경을 썼는데, 신기하게도 예전의 그 어지러움이 사라지고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초점 안경은 적응이 필요합니다 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합니다. 처음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찬송은 낯설고 설교는 지루하며 모든 문화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되고 기쁨과 감사함 속에서 신앙생활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믿음의 축복은 단번에 완성되는 사건이 아니라 서서히 자라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8장에는 벳세다의 맹인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복음서에 기록된 수많은 기적 중에서도 매우 독특합니다. 맹인에게 두 번에 걸쳐 안수 기도를 하셔서 치유하셨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안수를 받은 맹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그의 눈이 떠지긴 했지만, 아직 온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형체가 마치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흐릿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다시 안수하셔서 그가 밝은 눈을 완전히 회복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의문이 일어나게 만듭니다. 왜 예수님께서 한번에 맹인의 눈을 뜨게 하지 못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한번의 말씀으로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기도 하시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잠잠케도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믿음에도 성장 과정이 있다는 것을 시청각으로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 유아기와 사춘기를 거쳐 성인이 되듯, 믿음 또한 단계적으로 자라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아버지와 조카 롯을 데리고 갔습니다. 아내를 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자식이 없자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 정도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단계에 올랐습니다. 위대한 신학자 어거스틴이나 변증가 C.S. 루이스 역시 믿은 후에도 수많은 의심과 내적 갈등의 시간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인생을 단번에 바꾸시기보다 점진적으로 빚어 가십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인 ‘공사 중’인 상태입니다. 번듯한 건물이 들어서기 전 공사 현장은 시끄럽고, 먼지가 날리며, 통행이 불편합니다. 우리의 신앙 인격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죄의 유혹에 넘어지고, 기도의 자리에서 잡념에 시달리며,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불쑥 솟구칩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는 왜 아직도 이 모양일까?”라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공사 현장이 지저분하다고 해서 그 건물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완성품이 아니라 과정 중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다면, 하나님이 완성하실 것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 온전하지 않은 부족한 우리의 모습 때문에 좌절하면 안됩니다. 훌훌 털고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부족한 우리 모습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하게 지어진 건물이 된 뒤에야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로마서의 말씀처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십자가로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불완전함 때문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다리면서 우리를 완성해 가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벳세다의 맹인은 첫 번째 안수 후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이어서 주님은 두 번째 안수를 통해 그의 눈을 완전히 밝혀 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 곁에 머물러야 합니다. 부족해도 넘어져도 실수해도 주님의 일하심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나 자신이 공사 중임을 인정한다면, 타인을 바라 볼 때도 이 마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가정 안에, 직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공사 중입니다. 이제 막 공사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거의 완성되어가지만 아직도 문제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의 문제점을 볼 때, 그들을 비난하기보다, 맹인을 예수님께 데려온 친구들처럼 사랑과 인내로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지는 때가 있다는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위대한 건축가이신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설계하셨습니다. 지금도 건물을 지어가고 계십니다. 비록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언젠가 주님 앞에 서는 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