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퍽 다른 세계였습니다. 사회구조는 물론이고 관습, 어떤 현상에 대해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이해의 방식, 즉 상식도 우리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세계만 다른 것이 아니라 세계관도 달랐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같은 표현을 두고도 성경 시대의 사람들이 받아들이던 것과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때로는 오해를 낳기도 하고 때로는 한 표현이 담고 있는 중요한 의미를 포착하지 못하도록 가리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성경을 보다 깊이 읽으며 성경 속에 담긴 보화를 부족함 없이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이 쓰인 시대의 배경을 고려하여 읽어야 합니다.
전도서 9장에서 이러한 표현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가난한 지혜자”라는 표현입니다(전 9:15). 전도자가 지혜를 전해주며, 자신이 볼 때 흥미로웠던 사실을 하나 전해 줍니다. 전도자는 “작고 인구가 많지 아니한 어떤 성읍(전 9:14)”이 위기에 처했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 규모도 작고 사람도 많이 살지 않는 보잘것없는 성읍이었지만, 그러한 별 볼 일 없는 성읍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왕에게는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니는 성읍이었던 것 같습니다. “큰 왕”이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는 쉽지 않은 싸움을 해서라도 차지하려고 공격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에서 대비하고 있는 작은 성읍과 큰 왕이라는 표현을 볼 때, 여기서 말하는 큰 왕은 단지 왕 한 사람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군대의 크기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작은 성읍을 큰 군대가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기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작은 성읍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뻔해 보였을 것입니다. 큰 흉벽을 영어 성경에서는 성 공격용 보루를 지칭하는 siegeworks라는 단어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전도서가 기록된 원어인 히브리어 어근은 mzd입니다. 헤롯 대왕이 건설했던 유대 광야의 난공불락의 요새 ‘마사다(mazadah)’와 같은 어근입니다. 마사다 요새는 예수님 사후 벌어진 1차 유대-로마 전쟁에서 티투스(Titus) 장군의 예루살렘 공격을 피해 달아난 유대인 열심당원 960여 명이 차지하면서 그 방어 능력을 증명했습니다. 고작 960여 명의 일반 유대인들이 차지한 마사다 요새를 당대 최고의 군대였던 로마 군대조차 쉽게 함락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결국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잡아온 유대인 원로들을 노동력으로 활용하여 요새 한편에 군대가 접근할 수 있도록 램프(ramp)를 건설한 이후에야 마사다 요새를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항전하던 960여 명의 유대인들은 자결함으로써 영광스럽게 죽기를 택했습니다. 다시 전도서로 돌아가 볼까요? 전도서에서는 작은 성읍을 차지하기 위해 큰 왕이 큰 흉벽, 즉 요새를 쌓았다고 했습니다. 그 작은 성읍이 어떤 성읍인지는 모르지만, 그 성읍을 차지하기 위해 큰 군대가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성읍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입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작은 성읍의 운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 성읍에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가난한 지혜자가 지혜를 발하여 그의 성읍을 구한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지혜자가 자신의 지혜로 성읍을 건진 것은 여러모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먼저, 가난한 사람이 지혜자로 불렸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고대 사회는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삶의 자리가 정해지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신분제 사회였던 것이지요. 그러한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은 지혜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지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소수의 귀족들 및 왕족들 만이 지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혜를 위해 교육을 받기는커녕 하루하루 살기에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난한 지혜자라는 표현은 가난하지만 지혜로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멋진 인물을 연상시킬 수 있지만 고대 세계에서 가난한 지혜자라는 말만큼 양립할 수 없는 두 단어가 연결된 아이러니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놀라운 일은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인 이 성읍이 그 가난한 자의 지혜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하지만 제한된 상황에서 얻을 수 있었던 어설픈 지혜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우리는 이 두 놀라운 사실을 통해 가난한 지혜자의 지혜는 세상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였기에 그 지혜로 자신의 성읍을 구하는 놀라운 일을 한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자가 지혜롭게 되기는 불가능했던 사회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지혜자가 되었던 가난한 지혜자는 그 지혜를 자신의 성읍을 구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내가 속한 성읍을 구원하는 지혜입니다. 세상의 교육과 경험을 통해 얻는 지혜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내가 속한 가정과 직장, 공동체에 은혜를 베푸는 삶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