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들의 사역 덕분에 ‘지상 낙원’으로 간주됐던 ‘콩고민주공화국’의 한 마을이 2019년에서 2021년까지 기독교에 반대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민주군사동맹(Allied Democratic Forces, ADF)’에 연이어 잔혹한 유혈 공격을 당한 이후, 천천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한국VOM(한국순교자의소리, 대표 현숙 폴리)이 21일 전했다.
이에 따르면, 콩고민주공화국의 차비 마을 주민 그 누구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공격당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수십 년 동안 차비 마을은 불안정한 지역에서 평화로운 안식처 역할을 해왔다. 이 마을의 병원과 기독교 학교, 교회와 활주로 등은 1976년 당시 선교사들이 세운 시설이었다. 1990년대에 콩고민주공화국 전역에서 내전을 비롯한 여러 폭력적인 분쟁이 발생했지만, 차비 마을은 그 속에서도 비교적 안전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2019년 초, 폭력적인 이슬람 극단주의 ‘민주군사동맹’ 무장 세력이 밀림에서 나와 기독교인을 공격하고 납치하면서 차비 마을의 평화는 산산조각이 났다. 차비 마을의 촌장 라우 바밤은 “처음에 그들은 의사 4명과 병원 직원 2명을 포함한 주민 40명을 납치했는데, 이들을 두 달 동안 밀림에 잡아두었다가 풀어줬다”며 “납치된 사람 일부는 여전히 실종 상태”라고 덧붙였다.
현숙 폴리 대표에 따르면,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민주군사동맹’은 1990년대 후반, 우간다 정부 전복을 목표로 투쟁하는 반군 집단으로 창설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반군은 우간다 국경을 넘어 콩고민주공화국 북동부로 이동하여 국경을 따라 펼쳐진 울창한 밀림에 숨었고, 2018년, ‘민주군사동맹’은 자칭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ISIS)’라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에 충성을 맹세했다. 그들은 그 지역에서 기독교인을 근절하고 이슬람법을 제정하겠다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현숙 폴리 대표는 그 이후, ‘민주군사동맹’ 무장 세력이 정기적으로 밀림 은신처에서 나와 수천 명의 콩고인, 특히 기독교인을 살해하고 납치했다고 말했다. 2019년, ‘민주군사동맹’은 차비 마을을 두 번째로 공격하여 더 많은 사망자를 내고 가옥 및 시설을 파괴했다. 두 번째 공격이 일어났을 때 마을을 떠나 있던 촌장 바밤은 “두 번째 공격의 목표는 파괴하고, 살해하고, 불태우는 것이었다”며 “그들은 모든 것을 다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바밤은 ‘민주군사동맹’ 무장 세력이 자신의 아내와 손주 6명을 죽이고, 자신의 집을 파괴하고, 마을 교회 내부에 설치된 세례용 수조를 파괴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공격 이후, 많은 사람이 차비 마을을 떠났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2021년 5월 30일 밤, ‘민주군사동맹’은 피신하지 않고 남아 있는 주민들을 또다시 공격했다. 바밤은 “그들은 정글용 칼을 들고 왔다. 총을 든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정글용 칼만 들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쏘고, 칼로 벤 다음 시신에 불을 질렀다”고 전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민주군사동맹’은 밀림으로 사라지기 전에 교회 건물을 파괴하고, 내부의 모든 것을 부수고, 벽에 온통 인분을 발라놓았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들은 또한 학교를 파괴하고, 병원을 약탈하고, 많은 주택과 건물을 불태웠다.
지난 2023년 8월, 한국VOM 최전방 사역자들이 차비 마을에 성경을 전달하기 위해 3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거친 활주로에 착륙했다. 현숙 폴리 대표는 “활주로 한쪽 끝에는 대규모 유엔 평화 유지군 캠프가 있었고, 다른 쪽 끝에는 ‘민주군사동맹’의 공격에 희생된 많은 주민의 공동묘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최전방 사역자들이 도착했을 때 교회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주민 103명은 치명적인 공격으로 야기된 정서적 상처와 슬픔에 대한 영적 치료를 이틀간 받았다. 현숙 폴리 대표는 교회 안에 있던 103명 모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공격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었고, 대부분 마을에서 도망쳤을 때 성경을 포함한 소유물을 거의 모두 잃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주민 몇 사람은 성경을 받기 전, 개인적으로 겪은 일들을 짧은 연극으로 공연했다. 생존자 대부분은 공격 장면을 재연했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경험한 일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서 목회자가 살해당하는 그림을 그렸다.
기독교 상담가 헤델리는 “공격이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공격 당시 부모가 살해되고 학살당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는 사실에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델리는 공격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을 보살피기 위해 차비 마을로 바로 갔다. 그러면서 “그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때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다”고 했다.
생존자 게트루드는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치는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 게트루드는 며칠 동안 밀림에 숨어 지내다가, 이웃 국가로 피신했지만, 그곳에서도 평화를 찾을 수 없었다. 게트루드는 치유 과정이 계속되는 동안 기도해 달라고 순교자의 소리에 요청하며 “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도록, 그런 일이 또 일어날까 걱정하지 않도록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바밤은 그러면서 “원수를 용서하는 법을 알았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른 생존자 한 사람도 바밤의 감사에 공감했다.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잊지 않으셨다”고 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