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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4월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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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렬 목사] 침묵이 금이 아닐 때도 있습니다.

기영렬 목사(달라스 드림교회 담임)

침묵은 금입니다. 잠시의 침묵이 백 마디의 말보다 강력한 무기가 될 때도 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침묵이 지혜의 빛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섣부른 말은 화를 부르고, 잘못된 언사가 상처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생각 없이 던진 말이 오랜 관계를 깨뜨리고, 무심코 흘린 뒷담화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입니다. 말의 실수를 줄이는 법은 침묵입니다.
하지만 침묵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꼭 말해야 함에도 침묵하는 것은 책임 회피가 될 수 있고, 불의를 허용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침묵의 가치를 여러 곳에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침묵을 깨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길을 떠나 그릇된 길로 갈 때, 정의를 외면하고 욕망이 사람을 지배할 때,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릇됨을 지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힘든 것은 그 말을 듣는 사람입니다. 십중팔구 관계가 깨지거나 미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 선지자들이 겪었던 고난 중 하나는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만 하는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요아스 왕이 통치하던 시절, 선지자 스가랴가 그랬습니다. 그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여호야다는 목숨을 걸고 왕자 요아스를 숨겨 아달랴로부터 목숨을 지켜냈습니다. 그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나라를 집어삼켰던 아달랴를 축출하고 다윗의 후손이었던 요아스를 왕위에 복귀시켰습니다.
왕의 입장에서 여호야다가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 그를 아버지처럼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성전까지 수리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야다가 죽고 난 후 문제가 생겼습니다. 선대왕부터 심겨졌던 우상숭배의 영향력이 요아스 왕에게까지 침투한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의 그릇됨을 책망해야 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때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는 분연히 일어나 왕에게 진언을 합니다.
요아스는 회개는커녕 그를 성전 뜰에서 돌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우상숭배로 향하던 다윗 왕가에 브레이크가 작동되었기 때문입니다. 후대의 왕이었던 아마샤와 웃시야는 그나마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왕으로 칭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스가랴의 진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3장 35절에서 스가랴를 ‘의로운 선지자’라 칭찬하셨습니다.
하지만 잘못인 줄 알면서도 침묵하며 방관했던 제사장 우리야도 있습니다. 그는 스가랴보다 약 70~80년 뒤의 제사장이었습니다. 당시 유다 왕 아하스는 다메섹에 머무는 동안 아람 왕이 가져온 우상의 제단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는 즉시 그 모양과 양식을 본떠 새 제단을 만들라고 제사장 우리야에게 지시합니다. 제사장이라면 마땅히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어야 했지만, 우리야는 묵묵히 왕의 명령에 순종하며 성전에 새로운 제단을 들여놓았습니다. 원래 있던 놋제단을 옮기고, 낭실과 기구들도 제멋대로 재배치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성전이 이방 신의 형식을 모방하는 전시장으로 전락한 셈입니다. 물론 악의 주체는 아하스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방관한 우리야의 침묵도 악에 동조한 것이 되었습니다.
제사장이 떠받들어야 할 것은 왕의 권위나 세상의 유행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과 타협에 사로잡힌 그는 침묵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자신과 왕을 함께 타락시킨 직무유기가 되었습니다.
침묵은 금이지만, 우리야의 침묵은 왕과 나라를 타락시키는 방관이 되었습니다. 거짓과 속임수가 세상을 크게 흔들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대중들은 혼돈 속에서 방황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은 어둠의 상태와 상관없이 전진합니다. 때로는 빛의 가치를 모를 때도 있지만, 어둠의 때에 빛은 세상의 희망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구원이요 진리라는 것은 어두운 세상에 빛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선포하고 외쳐야 합니다. 침묵은 금이 맞습니다. 그러나 전해야 할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선포해야 할 진리를 외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세례 요한의 선포는 잠자던 영혼을 일깨워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보게 만들었습니다. 정치적 욕망과 질투로 예수님을 죽인 제사장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외친 베드로의 설교는 목숨을 건 선포였지만, 혼돈속에 있는 많은 유대인들에게 생명을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스가랴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야의 타협이 혹시 내 안에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참된 복음, 참된 믿음, 참된 사랑이 깃들어 있는 공동체는 침묵의 굴레를 벗어나, 진리 선포를 통해 세상을 바꿉니다. 침묵이 언제나 금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외쳐야 할 때, 담대히 입을 열어 진리를 선포하는 용기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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