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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5월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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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민 목사] 요셉을 들어 쓰신 하나님

최승민 목사
현 플라워 마운드 교회 장년교육 담당 목사

요셉 이야기는 성경에서 가장 감동적인 드라마 중 하나입니다. 한 사람을 통해 한 가족의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도 놀랍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요셉의 성장 과정도 감동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왜 요셉을 들어 쓰셨던 것일까요?

성경에서 처음 언급되는 요셉은 17세 소년입니다(창 37:2). 고대 세계에서 17세는 적은 나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요셉의 행동이 조금 미숙해 보입니다. “그(요셉)가 그들(형제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일곱 살의 어린아이가 아니라 당시로서는 번듯한 청년이나 다름없는 17세의 소년이 하는 행동으로는 미숙한 모습입니다.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마음껏 누리며 형들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요셉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채색옷(37:3)”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채색옷”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파쓰(pas)’는 히브리어 성경 내의 용례만으로는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무엘하 13장에서 왕녀들의 옷으로 한 번 더 언급되고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삼하 13:18-19). 최초의 번역 성경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어 구약성경(Septuaginta) 역시 이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어 “다양한 색채를 지닌”이라는 의미의 헬라어 단어 ‘포이킬론(ποικίλον)’으로 번역했고, 라틴어역(Vulgata) 역시 이 번역 예시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19세기 말부터 고대 근동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이 이루어지고 히브리어가 속해 있는 고대 셈어(Semitic languages)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쌓여감에 따라 학자들은 아람어, 시리아어, 우가릿어, 아카드어 등으로 이루어진 문헌의 풍성한 용례를 통해 이 단어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는 이 옷이 손바닥과 발바닥을 충분히 덮고도 남을 만큼 길이가 길고, 때로는 여러 화려한 장식을 더 해 특별한 예식에 입는 옷이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일반적으로 입는 의복이 아니라 일종의 예복이었던 것이지요. 야곱이 요셉에게 특별한 날이 아니라 평상시에 이러한 옷을 입혔다는 것은 반유목 생활을 하던 당시의 문화에서 요셉을 가족 단위의 노동으로부터 면제시켜주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버지로부터 티 나는 편애를 받았던 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들의 시기를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는 심상치 않은 꿈을 꾸고 그것을 그대로 형제들과 아버지에게 전합니다. 요셉을 향한 형들의 시기는 더 깊어졌습니다. 아마 이 시점에서 야곱은 요셉과 다른 형제들의 관계 악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요셉을 제외한 형들이 세겜에 가서 양을 칠 때, 야곱은 요셉과 그의 형제들의 관계 회복의 기회를 마련해 줄 심산으로 요셉을 형들에게 보냅니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다 잘 있는지” 보고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37:14).

형들이 양을 치는 곳은 세겜이었습니다. 이 당시 야곱의 가족은 헤브론 골짜기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지명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형들이 양을 치고 있는 지역인 세겜이 그리 멀지 않은 곳처럼 느껴집니다. 반유목 문화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양을 치기 위해 멀리 갈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자연히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애지중지하는 아들 요셉을 또 멀리 보낼 리가 있겠느냐는 막연한 추측 역시 이러한 이해를 돕는 데 한몫합니다. 그러나 세겜은 상당히 멀리 떨어진 지역이었습니다. 야곱의 가족이 머물던 헤브론 골짜기는 어디일까요? 헤브론 골짜기는 헤브론에서부터 이어지는 건천(wadi)을 의미합니다. 이 골짜기가 시작되는 위치가 헤브론이어서 헤브론 골짜기라고 불립니다. 헤브론은 주변에 샘이 넉넉했기에 고대 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사는 고도(古都)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헤브론 골짜기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헤브론 골짜기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브엘세바 주변 지역을 나타내는데 이 표현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간혹 샘이 있었어도 강수량 자체가 적어 물의 양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당시 야곱의 가족이 거주하고 있던 곳은 브엘세바 주변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의 가족이 거주하던 곳에서 요셉의 형들이 양을 치던 세겜까지는 어느 정도의 거리였을까요? 오늘날 브엘세바에서 고대의 세겜과 동일시되는 유적지(Tel-Balata)까지는 현대 도로를 따라 100마일이 조금 넘습니다. 고대 시대에 이용할 수 있었던 길을 통하면 더 험하고 먼 길이었을 것입니다.

이토록 먼 길을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요셉에 대한 자신의 지나친 편애가 자식들의 불화를 만들었다는 후회하는 마음과 더불어 이 기회에 요셉과 형들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원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요셉을 보낼 때, 요셉은 어떤 생각이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그 먼 길을 보내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형들과의 불편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리하겠나이다”라며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37:13). 요셉은 아버지로부터 편애받으며 자라 왔고 형제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며 순종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으나, 부모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며 순종할 줄 아는 기본이 된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그렇기에 하나님이 요셉을 들어 쓰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나 쓰실 수 있으시지만, 아무나 쓰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023년 새해에는 모두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은혜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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