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7년, 북 베트남의 총리인 호치민은 중국의 총리인 저우언라이에게 의료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이유는 남쪽에서 활동하던 베트콩(베트남 공산당원)들이 게릴라 전쟁 중에 말라리아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로 인해 병력손실이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중국 남부 지방도 말라리아 감염자 수가 수천 만명에 달하는 터라 치료제가 시급히 요구되던 상황이었다. 그 무렵 말라리아 환자를 치료하는 데는 주로 클로로퀸이라는 약을 사용했지만 당시 베트남과 중국 남부에는 클로로퀸에 내성이 있는 말라리아가 유행했다.
새로운 약이 필요했던 것이다. 문제는 한 해 전인 1966년에 중국 주석인 마오쩌둥이 홍위병들과 결탁하여 광기어린 문화대혁명을 시작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급진적 마오쩌둥주의자들 눈에 과학자들은 몰아 낼 부르조아 계층으로 여겨져 농촌지방으로 축출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할 연구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마오쩌둥식 문화혁명에 부합하는 과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온건한 성향의 저우언라이는 마오쩌둥을 설득하여 비밀 계획을 승인받게 된다. 1967년 5월 23일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을 위한 이 비밀 프로젝트에 약 전국 60여개 관련 기관으로부터 600명의 과학자들이 동원되어 비로소 연구가 진행되었고 동원된 이들은 문화대혁명으로부터 축출되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시작된 날짜에 따라 “523 항목”이라는 코드네임으로 불렸다.
이 프로젝트에 동원된 사람 중 투유유라는 여성 과학자가 있었다. 그녀는 39세의 나이로 1969년부터 중의약 협력팀에 보조 연구원으로 투입된 뒤 곧 능력을 인정받아 4명의 연구원을 이끄는 그룹리더가 되었다. 그녀가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은 중국 고전의학에서 단서를 찾는 일이었다. 문화 유산이 무차별적으로 파괴되고 많은 서적이 불태워지고 있는 문화대혁명 한 가운데 중국 의학 고전을 뒤적이며 말라리아 치료제의 단초를 찾는 일은 그 차체가 아이러니였다.
투유유는 옛 의학서에 수집된 640개의 처방 중에 4세기에 갈홍이 펴낸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에 언급된 개똥쑥의 효능에 주목했다. 개똥쑥 (학명:Artemisia Annua)은 국화과 쑥속에 속하는 한해살이 풀로서 전국 길가나 공터에서 흔히 서식하는 잡초이다. 이 식물의 잎을 손으로 비볐을 때 개똥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개똥쑥이다. 이름에서 풍기듯 이 흔하고 천한 풀에 뭐가 있긴 있었던 걸까?
투유유는 개똥쑥을 끓이거나 찐 이후 유효성분을 추출하는 일반적 방법 대신 고전에 적혀 있는 그대로 상온에서 추출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기존의 추출액인 에탈올 대신 비등점이 높은 에테르를 사용하여 유효 성분 추출하였고 190여차례의 실패 끝에 마침내 말라리라 억제 효능을 가진 성분을 찾게 되었다. 이 성분이 바로 아르테미시닌 (Artemisinin)이다.
기존에 말라리아 치료제와 구조가 전혀 다른 새로운 약의 등장이었다. 참고로 말라리아 병원체는 플라스모디움 팔시파룸(Plasmodium Falciparum)이라는 단세포 기생충인데 사람의 적혈구 내에 기생하면서 헤모글로빈을 먹고 산다. 흥미로운 사실은 기생충이 소화중인 헤모글로빈의 헴(Heme)과 철(Fe) 복합체에 의해 아르테미시닌이 특이적으로 활성화되고 이 때 부수물로 생성된 자유기(Free Radical)가 기생충을 죽게 만든다는 점이다. 먹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인과 응보의 통쾌한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투유유는 아르테미시닌의 효능을 동물실험에서 확인한 후 직접 말라리아가 창궐하던 중국 최남단인 하이난으로 날라가 21명의 말라리아 환자들에서 그 효능을 입증하였다. 이후 일련의 임상 실험들이 성공하자 2006년부터 세계 보건 기구(WHO)에서는 아르테미니신을 최우선 말라리아 치료제로 쓸 것을 권고하게 되었다.
WHO 통계에 의하면 아르테미시닌은 아프리카에서만 매년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을 말라리아로부터 구한 것으로 나타나 있고 2000년대 이후로는 전세계적으로 3백만명 이상의 생명을 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성과로 인해 투유유는 2015년에는 중국인으로서는 최초의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 되었다. 박사학위도 없고 유학경험도 없으며 중국 최고 과학자 지위인 원사 자격도 없기에 삼무(三無) 과학자로 불린 투유유는 개똥쑥을 닮았다.
삶의 어느 시점에서 이건 우리는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홀대하는 순간을 각자 경험한다. 개똥쑥처럼 말이다. 어디서나 널부러진 쑥도 흔한데 개똥이라는 “가치 없음”의 의미가 더해진 개똥쑥은 천한 것으로 치자면 두 말할 나위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개똥쑥에 발견된 아르테미시닌은 말라리아 치료제라는 위대한 과학적 성취을 넘어 천한 것의 보배로움, 흔한 것의 희귀함, 평범한 것의 특별함을 일깨워 주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얕은 존재인식 틀을 부수는 개똥쑥의 외침과 같다. 자신의 존재가 가볍다고 느껴진다면 우선 자신을 향한 파괴적이고 영구적인 평가를 거두고 자신 안에 아르테미시닌을 찾아 나서는 자기 존중으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별 볼 일 없는 무가치한 생명이란 절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존중만큼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각자의 몫이다. 불행이 원하는 것은 반대로 자신이 자기를 홀대하는 것이다. 제각기 나름대로 살아가는 인생을 존중하며 삶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서로를 소중히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를 개똥쑥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