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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12월 4, 2024

자율적 인간성을 회복하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잠6:7)

사회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L. Deci)는 자율성(自律性, autonomy)이란 “자신의 행동의 주최자로서 자유의지를 갖고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목표와 가치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행동을 상황에 맞게 통제하고 조절하고 적응시키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미들의 세계에는 그들을 통제하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개미의 세계에는 그들을 통제하는 특별한 통치자가 없다 할지라도 그들 스스로가 자율적 행동에 따라 공동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협력하고 일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만물의 영장(靈長)으로 창조함을 받은 인간도 자율성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것을 실험한 예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제하는 특별한 통치자 없이 자율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한 목적을 성취하면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관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자율적 자유의지를 방종(放縱)에 맡겨 육체적 욕망과 인간적 사고에 따라 행동하여 타락 세상, 무법천지의 세계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작은 미물인 개미들보다도 못한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어떤 통제, 감시, 지시를 받아야 행동을 한다는 것은 불행입니다.
감독자가 볼 때는 성실하게 일하는 것 같다가 없으면 방종적 행동을 하는 것은 거짓되고 역겨운 인간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통치자가 필요한데, 사실 역사 이래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참된 통치를 한 통치자가 별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억압과 착취, 다툼과 분쟁, 전쟁으로 인한 살육과 파괴가 난무했고, 인간들이 악한 통치자들의 도구가 되어 세상을 파괴시키는 일에 앞잡이 노릇을 했던 역사뿐이었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어떻게 하면 훌륭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까요?
다윗과 같은 통치자, 아브라함 링컨 같은 지도자를 기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개인 개인이 개미들처럼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시켜주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고 봅니다. 거룩한 목표, 탁월한 비전(Vision)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으로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달려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개미들처럼 자율적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협력하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우리는 미물의 개미보다도 못한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자율성을 저버리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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