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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5월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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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39)

이정엽 목사

우리가 어떻게 육체의 소욕을 이루지 않을 수 있는가? 어떻게 죄의 욕심을 따르지 않고 물리칠 수 있는가?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과 뜻을 따라갈 때 가능하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자리만 잡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알며 따라가도록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성경 말씀과 우리의 내적 증거나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고 깨우쳐주시고 인도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가 따를 성령의 소욕이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아무 일도 안 하시고 우리 스스로가 노력하고 추구함으로 갖게 되는 소욕이 아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대로 우리 안에는 두 가지의 소욕(desires), 마음과 원함이 서로 대적하며 싸우고 있다. 로마서 7장에서 말씀하신 대로 갈등과 내분이 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19절)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22-23절)
주의할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서로 다른 두 마음이 내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 안에 악한 마음과 선한 마음이 함께 공존하고, 내가 내 마음대로 원하면 선한 마음을 가질 수 있고, 또한 악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본질상 타락한 죄성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오직 죄와 악밖에 없다. 사람의 관점에서나 선을 말할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의 가장 높은 수준의 선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죄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악이지 선이 아니다. 내 마음대로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을 함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왜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악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과 싸운다고 말한 것인가? 그것은 사도 바울 안에 성령님이 내재하셔서 일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선악의 싸움이 불신자의 마음에 있는가? 당연히 없다. 그들 안에 성령님이 안 계시니까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으로 갖게 되는 성령의 소욕, 쉽게 말해서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처럼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는 모든 신자에게는 이런 영적인 싸움, 곧 내 육신의 소욕을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과 성령의 소욕, 곧 성령님께서 주시는 소욕이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소욕은 서로 다르고 대적하는 관계이다. 그래서 이 서로 다른 두 소욕들간의 싸움이 있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아무리 우리의 영과 양심을 통해 당신의 뜻을 전달하셔도 우리가 그것을 거부하며 따르지 않고, 우리의 본래적이고 습관화된 죄의 욕망, 육체의 소욕과 욕심을 따라가게 되면 육체의 일, 죄를 낳게 된다.
그런데 종종 사람들은 “내가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지 한 번 마음만 먹으면 성령님을 따라 선하게 살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결단을 주저하고 죄를 끊지 못하고 회개를 미룬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고 오해이다. 성령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이 아니고서는 결코 우리는 회개하거나 선한 삶이나 성령님을 따르는 삶을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항복하기 전까지는 결코 성령님을 따라 걸어갈 수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하고자 하는 나는 “내 속 사람”이라고 한 것이고, 악을 행하고자 하는 나는 “내 지체”라고 구분하여 말한 것이다. 속 사람은 성령님으로 거듭난 나, 새롭게 창조된 영, 성령님께서 거하시며 일하시는 거듭난 영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을 가리킨다. 그러나 지체는 여전히 남아있는 죄성과 죄의 습관이 배어 있는 우리의 몸과 혼을 가리킨다. 그래서 육체의 소욕이 우리의 몸과 혼(생각, 감정, 의지)을 통해서 수시로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에게는 항상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과의 싸움이 있으며, 우리가 반드시 이 싸움을 해야 되고, 이 싸움에서 승리해야, 즉 성령께서 주시는 소욕을 따라가야 마침내 우리는 육신의 소욕을 이기고 성령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이처럼 어떠한 육체의 소욕도 이길 수 있는 성령의 소욕을 주시고, 그것을 억지로가 아니라 기뻐 우리가 따라 순종할 수 있도록 해주셨으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 복음이 아니며 참 자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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