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의 수신자와 우리의 공통점
여러분은 히브리서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십니까? 아마도 많은 분들은 “믿음 장”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믿음으로 누구는 어떻게 했고, 믿음으로 또 누구는 또 어떻게 했고…” 그렇다면 히브리서 기자는 왜 그렇게도 믿음을 강조하는 걸까요? 믿음이 중요하니까? 믿음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하다면, 히브리서 1장부터 강조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왜 하필 11장에 와서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히브리서 배경에 대해 알아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편지입니다. 편지는 누군가가 목적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보내는 글입니다. 그러면 편지를 쓴 누군가는 누구일까요? 정답부터 말씀드리면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초대 교부 중 Oregon이라는 분은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다고 합니다. 히브리서를 누가 썼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는 누구일까요? 히브리서는 구약 성경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신약 중에서 구약을 가장 많이 인용한 책이 바로 히브리서라고 합니다. 구약을 인용한다는 의미는 히브리서 독자들이 구약을 많이 알고 있다는 의미이고, 당시 구약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유대인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수신자는 제사장과 관계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말씀하는데, 이는 신약의 다른 부분에서는 나오지 않는 표현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작은 가정 교회 구성원들로 신앙 경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적으로 둔감한 상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고난에 대한 두려움과 유대교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쯤 되니까 히브리서 기자가 왜 믿음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배교라는 긴급한 상황 가운데 있는 수신자들을 향해 그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킬 목적으로, 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기록한 말씀입니다.
히브리서는 언제 기록이 되었을까요? 이스라엘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AD 66년경 이스라엘이 로마에 반란을 일으켰고 로마 군대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습니다. AD 70년에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과 성전을 완전하게 파괴하였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는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전혀 암시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면, 히브리서는 그 사건 이전인 AD 70년 이전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로마에서는 두 번의 박해가 있었는데, 한 번은 AD 49년 클라디우스 황제의 박해, 즉 로마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추방했던 사건입니다. 또한, AD 64년경 네로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누명을 씌었던 박해가 있었습니다. 히브리서는 이 두 사건 사이의 언제쯤 기록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가운데서 심각한 핍박의 위기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인내와 헌신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주변의 유대인 회당에서 오는 압박을 못 이기고 유대교와 타협하고, 더 나아가 다시 유대교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대제사장이면서 새 언약의 중재자 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특히 환난과 박해 가운데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와 권면과 확신의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했던 점에 주안점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 지에 중점을 두고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COVID 이후에 많은 분들이 교회를 떠났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시대에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협박하는 바람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기지 못하고 유대교로 돌아갔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올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믿음은 믿음, 삶은 삶, 믿음 따로 삶 따로 삶은 믿음을 떠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성숙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이 교회를 떠나려고 했던 원인은 믿음이 초보 상태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고난에 압도되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쁨을 잃어버렸고, 유대교 성전 제사를 그리워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기쁨의 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