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
디모데전서 1:4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정신을 팔지 못하도록 명령하려는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신화는 이교적 전설입니다. 우리도 단군 신화, 주몽 신화 등 신화가 많습니다. 그 당시에 유행하던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입니다. 우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그저 이야기라고 치부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족보 이야기”는 유대인들이 족보를 조작하는 등 구약 성경을 왜곡하였던 것을 말씀합니다. 에베소 교회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어리석음에 대해 비판하면서 디모데에게 경계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태초에 우주나 인류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또한 자신과 가문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하고 이를 미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상력을 동원해 우주 창조의 신화를 지어내고 자신의 나라에 어떤 신적인 능력이나 영웅이 연결되어 있다고 미화시켜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자신과 인류의 미래와 종말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합니다. 그러므로 “신화와 족보 이야기”는 이런 욕망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철학이나 다른 종교에 의지하고 거기에서 대답을 구하려고 합니다. 불교와 힌두교에서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한한 윤회를 할 뿐이고 기원과 종말에 대한 질문과 답변은 그야말로 안개처럼 희미하고 잡을 수 없는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답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우주와 사람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한한 윤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따라서 시작이 있고 역시 끝도 있습니다. 사람은 단세포에서 시작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사람인 아담과 하와에서 시작되었고 그 미래 역시 무한하게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종말의 대 심판이 있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머리로 만들어 낸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고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말은 그만두고서 내일 일조차도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 없는 그야말로 하루살이 같은 존재입니다.
얼마 전에 병원에서 채플린으로 섬기시는 전도사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분은 주로 임종을 앞둔 분들을 섬긴다고 했습니다. 그분들께 복음을 전하고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 중 한 분인데 아마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분이었나 봅니다. 그 환자분이 전도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얼마 있으면 하늘나라 가서 예수님을 만나게 될 텐데 전도사님이 예수님께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하세요. 제가 대신 전해드릴게요.” 그런데 마침 그 전도사님이 몇 달 동안이나 딸꾹질이 멎지 않고 계속되어서 너무 괴로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환자분에게 딸꾹질이 멈추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전해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환자분께서 예수님께 꼭 전해드리겠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전도사님의 딸꾹질이 멈추게 되면 제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결국 그 환자분은 얼마 후 소천하셨고 그 전도사님은 자기가 딸꾹질 얘기를 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환자분이 소천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나서야 그 전도사님은 자기 딸꾹질이 멎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합니다. 그 전도사님은 “그 환자분이 예수님을 만났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경계해야 한다고 하였던 신화와 족보 이야기,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그 “신화와 족보 이야기”는 뭘까요? “신화와 족보 이야기”는 우리에게 있어 본질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마치 이게 우리 인생의 전부 인 거처럼 목숨 걸고 하루 24시간, 잠자는 시간에도 끝없이 고민하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변론하는 그 신화와 족보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흔들 수 있고 믿음 중심의 청지기가 아닌 불의한 청지기로 전락시킬 수 있는 힘과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 환자분처럼 주님을 만나면 뭐라고 할까요? 제가 뭐라고 전해드릴까요? “신화와 족보 이야기” 말고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뭘까요? 그것은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