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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1월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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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영 목사] 세상 속에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선교 공동체

안지영 목사(나눔교회 담임) 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부교수

80년대 초반에 선교사가 되었던 나는 막 해외선교에 불이 붙기 시작한 한국 교회의 후원을 받아 선교사 생활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한국교회가 전 세계에서 해외선교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었지요. 그래서 서방 세계의 교회들도 동방의 작은 나라의 교회가 해외선교에 열정을 다하여 뛰어든 것에 놀라고 감탄했던 게 사실이었고요. 그래서 그런지, 당시 대부분의 교회는 해외선교를 가장 중요한 교회 프로젝트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다양한 선교 집회가 교회 별로, 교단 별로, 초교파 별로 열렸습니다.
어찌 보면 해외선교에 대한 열풍이 한국 교회에 아주 강하게 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열풍이 점점 식어져 가다가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교회의 해외선교는 정말 지지부진한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 현상은 한국 교회만 아니라 미국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선교 헌신자도 급격하게 줄었을 뿐 아니라, 해외선교 후원도 눈에 띄게 줄어버렸지요. 이런 현상은 교회의 해외선교 역량이 꺾어져 버렸다는 거지요. 교회의 역동성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의 국내선교 또한 어려운 형편이 되었습니다. 사실 국내선교는 해외선교의 그늘에 가려 있었지요. 국내선교가 해외선교보다 덜 힘든 사역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해외선교보다 사역비 모금이 더 어려울 수밖에요. 결국 국내든 국외든 모든 사역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라는 인식보다는 그 사역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로 사역을 평가하는 분위기에 한국 교회가 젖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내선교든 해외선교든 남들이 하지 못하는 어려운 사역을 하는 곳에 교회의 시선이 더 갔었지요.
이런 현상은 성경에서 말하는 선교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거였습니다. 결국 교회가 선교를 잘못 알고 있었던 거지요. 여태까지 한국 교회는 선교를 교회의 여러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여겼습니다. 그랬기에 어떤 특정한 프로젝트가 선교 사역보다 우선하게 되면 교회의 역량이 그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내가 이해했던 선교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교 현장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들 보면서 선교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이 선교가 제대로 된 것인지 많이 고민이 되었지요.
이런 고민을 안고 들여다본 성경은 선교의 주체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타락한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여, 궁극적으로는 온전한 피조세계를 완성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목표라는 것을 알게 된 거지요. 그 목표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선택하셨고, 결국에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위해 예수님을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 우리가 선택됐다는 겁니다. 이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의롭게 살아가는 임무’를 부여받은 교회의 일원이 된 거지요. 그래서 교회는 본질적으로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선교적 속성’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선교적 속성’은 교회의 ‘해외선교 활동’이나 ‘국내선교 활동’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선교적 속성’이 교회의 본질을 말하는 거라면, 해외선교나 국내선교는 말 그대로 교회의 외부 활동 혹은 외부 사역을 말합니다. 교회의 이러한 사역은 교회의 ‘선교적 속성의 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선교적 속성’을 좀 더 원론적으로 접근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삶’을 소환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일상의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가 세상으로 보냄 받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매일매일의 삶터에서 사는 것을 말한다는 걸요. 이러한 삶의 방식을 터득한 우리는 해외이든 국내이든 어떤 특정의 사역을 부여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러한 교회의 선교적 속성이 나눔교회의 비전 속에 온전히 스며든다는 것을 가정할 때, 우리는, “세상 속에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선교 공동체”라는 세 번째 꿈을 꿀 수 있을 거라 보았지요. 그래서 교회 공동체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예배, 교제, 교육, 봉사, 선교)이 우리가 세상 속에서의 일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이렇게 할 때 비로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인 것을 알게 될 거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될까요? 그들은 우리 교회에 와 보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서로 섬기고 용서하는 것을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 수 있단 말입니까?
교회는 정말 달라도 참 많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 때문에 같이 모이는 이상한 집단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이런 집단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 서로 섬기고 사랑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불가능한 집단일 수밖에요. 그런데도 그 어려운 것을 성취하려고 모였다는 것이 참 신비로운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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