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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1월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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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숙 사모] 흘려보낸 시간속에서 찾게하신 감사

이 글을 쓰면서도 잃어버렸던 계단으로 가는 문의 열쇠를 찾은 듯 이상하기만 합니다. 경북에서 사역한 80여 명의 의료선교사들을 집필하시며 Hunn선교사님에 대한 기록을 찾고 계시던 미국 모 대학 선교학 교수님의 촘촘한 인터넷의 그물망에 내가 걸렸습니다. 구라선교회에서 7년 넘게 일했지만 거의 잊은 50년 전의 이야기는 많이 망설였고 쉽지 않았습니다.
대구·경북 의대 부속병원 뒤편의 구라선교회는 깨끗하고 아담한 삼 층 건물입니다. 매주 3일은 경북 5개 군에 사는 나환자들을 이동 진료하고 필요한 약품과 붕대 등을 줍니다. 수요일, 토요일은 직원예배로 시작해서 수술과 입원환자를 돌보고 나환자의 모든 것이 무료입니다. 화요일 대구진료일은 여전도사님의 예배 인도 후 피부과 의사의 진료와 병리 검사로 시작됩니다.

-유 또방우 하라부지 퍼뜩 오이소.
-유 씨 성인데 두 번째 아들이라 또 방우(바위)라고 이름을 지었다네예. 유 차석이지예.

이름 뜻을 듣고 터지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습니다. 대구 사투리를 유창하게 하는 Hunn 선교사님이 신기했습니다. ‘서울 촌사람’인 제게 억센 사투리를 대신 통역해 주기도 합니다.
나보다 두 뼘 넘는 큰 키에 푸근한 몸집의 한 선생님은 유또방우 노인을 물리치료실로 데리고와 마주 앉히고 하얀 타월이 깔린 치료대 위에 손가락이 굽은 두 손을 올리게 합니다.

-손 좀 보여주이소. 아이고 또 장갑 안 끼고 일했네예. 우짤끼고 손에 이 많은 가시들을…

굽어진 손가락은 마디가 터서 갈라지고 물집생긴 손바닥은 물론 손등까지 가시가 잔뜩 박혀 있습니다. 이월이면 아직 겨울이라 말린 밤송이를 불쏘시개로 아궁이에 불붙이다가 데인 겁니다. 가시에 긁히고 찔리고 어느 자리는 이미 고름이 잡혔습니다. 아플 텐데 감각이 둔해져서 아픈 줄도 모르니 더 안타깝습니다. 둘이 한 손씩 잡고 소독된 바늘과 솜으로 100여개의 가시를 빼내고 연고를 발라주고 한 선생님은 열심히 반복 교육을킵니다.

-하라부지 저녁 잘 때 손 씻고 물기있을 때 고약 바르면 트지않고 부드럽다고 했지예. 구부러진 손을 펴는 운동하고 자라켔는데 했습니까? 안행거 같네예. 해야 더 이상 불구안됩니더.
-손에 바르는 고약(바셀린)이 음써서….
-그라믄 아주까리 씨를 돌팍에 쩌서 그 기름 이라도 바르락했능거 생각나지예!

다짐받고 치료약품을 받도록 해줍니다. 이번에는 젊은 남자 환자에게 양말을 벗으라고 합니다.

발좀 보여주이소. 아이고 발에 생긴 큰 물집이 터졌네예. 우쩌다 이리 맹긴거지예?
-맹긴거 아이고요. 저녁에 옆집에 마실갔다가 집에와 자고 나니 무단히 물집이 생기데요.
-무단히가 아닝기라예. 옆집의 뜨신 구둘목에 발이 데었네예. 감각이 없승께 뜨거워 데어도 모른다꼬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라고 내내 말했구만~.

이렇게 큰 상처! 이걸 어쩐다. 혀를 차더니 진료실로 데려가서 의논 후 화상 치료로 며칠 입원시키도록 했습니다.
Hunn 선교사님은 호주에서 온 물리치료사로 한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안식년 휴가로 귀국해야 했습니다. 서울을 떠난 적이 없던 철부지가 구라선교회가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채 교수님의 소개로 갔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한센 박사가 나균을 발견함으로 한센병 환자라고 하는 나환자 물리치료는 새로 배워야 했습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손, 발, 얼굴 운동을 가르쳐주고 또 재활 수술 하기 전후의 물리치료를 위해 각 근육의 테스트 또한 중요합니다. 한 선생님께 배워 발목이 늘어진 분을 위해 보조기를 만들었고 석고붕대도 직접 해야 했고 전기톱으로 석고붕대를 처음 뗄 때는 다리를 자르는 거나 아닌지 무서웠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일을 시작한 왕초보인 제게 한 선생님은 자기도 일하면서 배웠다고 염려 말라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국가고시 합격한 몇 개월 후 한 선생님은 호주로 가셨고 안식년 끝난 뒤 다시 오셔서 얼마간 같이 일했습니다.
속리산 여행도 함께 다녀왔는데 호주로 다시 가신 얼마 후 내게 닥친 일이 여러 가지로 겹쳐서 잊고 살았습니다. 처음 예수님 영접할 때 크나큰 도움과 사랑을 주셨는데 기억 저편 두꺼운 먼지에 덮여 있었습니다. 선교학 교수님 덕분에 Hunn 선교사님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본명은 물론 한국 이름도 잊고 Hunn 이라는 성만 기억나는 것이 죄송했는데 이미 2009년에 소천하셨다고 하니 안타까움이 더했습니다.
어디든 음과 양은 공존하듯 구라선교회 또한 사회 초짜인 나에게 삶의 시험대로서 잊고싶은 일도 있었지만, 주님의 강권하신 부르심으로 새로 태어난 영혼의 산실입니다.
누군가가 꼭 해야 할 일 경북 의료선교사를 찾아 발간하는 일을 아주 작게나마 돕게 하심이 감사합니다. 제게는 참으로 우연이지만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주님의 처음사랑을 다시 깨닫게 하신 일입니다
세월 속에 묻혔던 Hunn 선교사님과 나환자들의 삶은 언젠가 긴 글로 쓰고 싶습니다. 따듯한 하루에서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선한 봉사의 씨앗을 뿌려라. 감사의 기억들이 이 씨앗을 자라게 할 것이다”
-프랑스 낭만주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마담 드 스탈(Madame de St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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