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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11월 24, 2024

[방삼석 목사]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교리

방삼석 목사
달라스 뉴라이프 선교교회 담임

삼위일체 신앙의 쟁점(Key issue)은 하나님이 존재에 있어서 한 분이, 어떻게 삼위이실 수 있는가? 각각 “구별되는 개별적 삼위가 어떻게 한 본질이실 수 있는가?” 였습니다. 다메섹의 요한(650-750)은 삼위의 일체성을 헬라어 “페리코레시스 περιχώρησις”를 가지고 설명했습니다. 언어와 개념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삼위의 공재개념은 삼위일체가 단순한 군주론(역동)적 유일신론이나(삼위를 강조하지만, 권위와 영광과 존재에 있어서 다름), 양태론(삼위를 부정: 동일본질을 강조하기 때문에 양태론이라고 비판을 받음)으로 오도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이 용어를 먼저 사용한 사람은 고백자 막시무스(Maximus the confessor, 580-662)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상호침투를 설명하면서 사용한 용어를 다메섹의 요한이 삼위일체적 용어로 사용한 것입니다.

◆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이후의 과제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통해 기독교 삼위일체 신론의 정통이 확립되자, 이제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성과 어떻게 한 인격으로 계신가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예수가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라면 두 본성은 어떻게 한 인격으로 연합하는가? 삼위일체 논쟁 자체가 참되고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가 어떻게 참 하나님이신가에 관한 논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성의 교리가 확립 된 이후, 그리스도의 한 인격안에 어떻게 두개의 본성이 계신지는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 에비온주의와 사모사타의 바울 그리고 영지주의
유대교에서 나온 에비온주의자들은 철저한 율법주의자들이었으면, 예수님 이후에도 안식일준수와 할례를 강조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이시며, 다시 오셔서 땅을 다스릴 것이라고 믿었지만, 동정녀 탄생과 그리스도의 신성은 부정하였습니다. 사모사타의 바울(Paul of Samosata, 200~275)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성령께서 오셔서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갖도록 신적인 존재로 높이셨다고 주장했습니다. 268년 안디옥에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지만, 안디옥의 루키안과 그의 제자 아리우스에게 연결되어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는 ‘아리안주의’(Arianism)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성과 분리한 이단들도 있습니다. 헬라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가현설(Docetism)주의자들은 신성은 고통당하실 수 없고 그리스도도 십자가 위에서 아무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ex. 베드로 복음서: But he kept silence, as one feeling no pain)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하거나, 부정하는 이들은 삼위일체 논쟁중에 이단으로 배격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관한 문제는 삼위일체 정통교리가 확립 된 후에도 심각한 교리 논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 라오디게아의 감독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s, ? ~ 382)
아타나시우스파에 속한 라오디게아의 감독 아폴리나리우스는 어떻게 영원하신 신성이 가변적인 인성과 연합하실 수 있는지 설명하려 하였습니다. 그는 참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로고스와 연합하여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 두 개의 인격이 있는 꼴이 되고, 결국 성육신(하나님이 사람이 되심)교리가 파괴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통일성을 주장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당시에 잘 알려진 인간 본성을 몸(sarx), 영혼(psyche), 정신(nous)으로 구분하는 플라톤적 삼분설(살전 5:23)을 따라, 본질적으로 죄를 짓기 쉬운 인간의 영혼을 죄로부터 분리시키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과 인간의 혼 또는 동물적 생명의 원리는 그대로 취하셔도 인간의 영은 취하지 않으시고, 합리적이고 영적인 자의식과 자기결정을 위하여 신적 본성이신 로고스가 대신 그 자리를 취하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완전함과 구속의 무한한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https://www.newadvent.org). 이처럼, 로고스 곧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간의 육체와 결합하였다고 설명하는 기독론을 로고스-육체(Logos-sarx) 기독론이라고 합니다.

◆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비판
그러나, 그리스도가 인간적 마음이 없는 신인(神人)이고, 참된 인간을 입고 있는 분이 아니라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을까요? 갑바도기아 세 교부들(카이사리아의  Basil,  나지안주스의 Gregory, 닛사의 Gregory)은 아리우스를 비판한 아타나시우스의 논리를 따라 구원론적 입장에서 아폴리나리우스의 오류를 지적합니다.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완전한 인성 어느 하나라도 부정하면, 결국 구원론적인 문제가 생긴다고 아리우스주의를 비판하지요. 아폴리나리우스의 말대로라면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간의 육체적 껍데기만 입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리스도의 인간적 본성을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럴 경우, 그리스도가 참된 구원의 대리자가 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체까지취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육체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신성에 참여할 수 없게 되므로(Athanasius, On the incarnation of the Word of God), 아폴리나리우스는 그가 지지했던 아타나시우스의 논리에 의해 정죄되었던 것입니다.

◆ 계몽주의와 기독교의 기독론
이러한 기독론적 오류들은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이후, 그리스도에 대한 기독교의 정통신앙은 철저히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에비온파나, 아리우스주의가 주장하던 것처럼, 도덕과 인간성의 모범인 예수만이 기독교의 이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인간이신 그리스도는 초기 기독교인들에 의해 신격화된 역사적 예수의 신화(루돌프 불트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는 신화와 미몽에서 벗어나 참된 이성의 종교로 거듭나야 할 것으로 여겨졌지요. 그러나, 기독교의 정통 신론과 기독론은 사소한 사변의 결과물이 아니라, 철저한 논리적, 철학적 논쟁의 싸움터에서보편 교회가 성경적 교리로 공인한 것들입니다. 기독교 정통신앙이 신화와 미몽으로 치부되는 현대 기술문명의 시대에,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오히려 고대 교부들의 치열한 논쟁과 성경적 반성을 통해 확립된 정통 신앙의 체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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