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예수를 믿어도 물질, 돈에 대해서 만큼은 믿음이 작동하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돈이 있어야 잘 믿을 수 있고, 교회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일단, 먹고 살아야 교회도 있고 신앙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질의 손해 때문에 자신의 재물을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드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님은 매우 절망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감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부자가 무조건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이 아니라, 물질에 있어서 자유하지 못하면, 하나님 섬기는 신앙도 결코 제대로 될 수 없음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실제 목회 현장에서 가장 양육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물질생활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성도의 물질생활은 그의 예배생활, 신앙생활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은 이 부분을 가급적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목회가 잘되기를 바라고, 가능하면 헌금의 문제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예배를 강조하는 목회를 한다면, 이것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관문임을 알게 됩니다. 참된 예배가 없이는 삶의 현실이 피폐할 따름인데, 그 참된 예배의 현실 가운데 신실한 성도의 온전한 예물생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는 반드시 제물이 있었습니다. 그 제물은 구별된 것이어야 하며 흠 없는 것으로만 하나님 앞에 들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제사에 제물이 없다면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지 않으셨음을 성경의 레위기가 증거합니다. 창세기의 가인이 드린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물을 열납하지 않으셨을 때 그 제사는 실패한 것으로 결론지어졌습니다. 실패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사는 제물만의 문제가 아닌, 제물을 드린 예배자가 함께 하나님께 드려지고 열납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거짓된 제사와 제물을 알고 거부하십니다. 그러므로 제물이 아무리 귀한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드린다 해도, 드리는 이의 중심에서부터 구별된 제물이 아니라면, 그가 천천 만만의 번제를 드린다하여도 허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받았으니 드려라” 하는 것이 예물을 드리는 신앙의 바른 관점입니다. 받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드림으로 복을 받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예배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면서 “그중에 십분의 일은 내 것”이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나님께서 직접 분량까지 정해주시는 겁니까? 모든 것이 다 하나님 당신의 것이지만,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림으로 더욱 귀하고 좋은 복을 받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과 당신의 자녀가 단순히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 이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면서, 세상의 주고 받는 기복신앙 수준에 머물지 아니하고, 당신의 존귀한 백성으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한마디로, 십일조의 규례 등 제물 규정은 당신의 백성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복된 방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축복하기 원하십니다. 얼마나 축복하시기 원하시는 지, 아예 강제 규정으로 바칠 헌물을 정해 두셨습니다. 가난한 자이면 산으로 들로 나가서 산비둘기라도 잡아서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욕심꾸러기 하나님이 아닌데 왜 그렇게 하시는 겁니까? 오직 한가지 이유입니다. 지독하게 당신의 자녀를 사랑하시고, 그 자녀가 복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는 “도적질하지 말라”고 까지 하십니다. 당신의 자녀를 반드시 축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지독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교인들은 십일조를 율법이라고 말하며 거부합니다. 어떤 이들은 구약의 Tax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내어 줌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폐하여졌으니 이제는 십일조를 드릴 필요가 없고, “억지로 내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앞세워 드릴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렇게 방송에서 목소리 높여 떠드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고 인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하나님 앞에서 무거운 책망받을 일을 앞장서 행하는 것 뿐입니다.
일조전납(一條全納), 즉 십일조는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반납하는 것입니다. 마치, 물건을 팔 때 Tax가 붙어 있기 때문에 Tax를 받으며 받은 Tax를 돌려주는 것이 조세법에 있듯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로 돌려주지 않으면 떼먹은 것이 되고 훔친 것이 되니, 이를 가리켜 도적질한 것이라고한 성경의 표현은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중에 한 부분만 내 것이라고 선언하시고 그것을 구별케 하셔서, 이를 순종하는 자들에게 더욱 축복하시기 원하시는 데, 인간은 그 얄팍한 이성을 동원해 시비를 걸면서 하나님의 축복의 길을 비껴갑니다.
제물이 그 사람의 신앙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가 실패하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구약에서 본 바와 같이 가인이나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말라기에 나오는 제사장들, 신약에 나오는 제사장 서기관들과 율법사들,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사람들, 그들의 제물이 그들을 설명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신앙생활과 축복된 예배의 회복을 원한다면 반드시 물질 부분에서 하나님앞에 정직하고 자유로와야 합니다. 예물생활에 실패하면, 신앙생활에 온전한 복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