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캘리포니아 북쪽 해안가에 위치한 레드우드 국립공원에 갔다. 이웃으로 지내던 목사님 가정이 시애틀로 이사해서 잠시 방문했다. 태평양 해안가를 따라 국도를 타고 가는 계획을 세웠다. 가는 길에 레드우드 국립공원이 있었다. 그곳에서 마주한 풍경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바람이 솔잎 사이로 지나가면 나무들의 호흡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숲은 본능적으로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사뿐히 걸어오는 햇살이 숲에 내려앉아 거대한 바람 소리를 멈추게 했다. 바람이 곱게 빗질해서 빗어 내린 침엽수들은 병정들같이 서서 숲의 친위대임을 증명했다. 부드러운 바람결은 숲에서 왈츠를 추는 듯했다.
숲을 만끽하다 내 시선이 흘러간 풍경이 있었다. 후미진 곳에 홀로 피어 있는 작은 꽃들이 시선에 들어왔다. 바람이 실어다 주는 자연의 향기를 벗 삼아 호흡하는 작은 식물들. 화려한 꽃들이 무대를 떠난 계절의 끝자락에 홀로 피어 있는 들꽃들. 거대한 나무들의 기운에 압도되어 숨소리조차 버거울 것 같은 작은 들꽃들과 작은 나무들에 마음이 갔다.
레드우드 공원 초입에서부터 숲의 위용에 압도당했다. 붉은빛을 띤 거목들이 줄지어 서서 우리 일행을 맞아 주었다. 거대한 숲속 궁정으로 병정들의 환호를 받으며 성에 입성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붉은빛과 푸른 빛으로 우거진 숲을 만끽할 수 있었다. 태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에서 마치 그 두 가지의 빛깔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 웅장함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 숲을 마주하며 하나님의 세밀하신 손길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울창한 숲속을 지날 때 거목들이 석양을 등에 업고 우리 일행을 계속 따라왔다. 그 숲에 들어갔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태평양 바닷가의 석양과 레드우드의 붉은 빛의 조화는 경이로웠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가 있는 숲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세쿼야 국립공원이다. 미국 서부의 몇몇 국립공원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와 가장 오래된 나무, 가장 높이 자라는 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자란다. 그중에서 레드우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이 자라는 나무다. 이 나무는 보통 60미터에서 70미터의 높이로 자라는데 100미터가 넘는 나무들도 많다. 레드우드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은 2,400년이란다. 그 나무의 둘레는 어른 열 명이 두 팔을 벌려 둘러싸도 감싸 안을 수 없는 크기다.
거대한 숲에 나무들이 누워 있는 모습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나무의 크기와 높이의 웅장함에 비해 뿌리의 깊이가 깊지 않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내 시선과 관심은 레드우드의 뿌리에 멈추었다. 그곳에 있는 많은 거목이 오랫동안 숲을 지키며 지탱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 숲에는 놀라운 비밀이 있었다. 레드우드의 뿌리는 불과 3미터에서 4미터밖에 내려가 있지 않는다고 한다. 그 지역은 암반이 깔린 지질 지역이기 때문에 나무뿌리가 암반을 뚫고 들어가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거였다.
레드우드의 거목들이 어떻게 거센 태풍을 견디며 오랜 시간 동안 생명을 유지하고 자랄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그 거목들의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하지만, 뿌리가 연결되어 있어 마치 숲 자체가 하나의 나무인 것처럼 보였다. 뿌리가 얕아도 거센 비바람이 몰아칠 때 큰 위력을 발휘하고 서로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주는 거였다. 가물 때는 영양분이 부족한 나무에 영양분을 나누어 주고 서로를 도와준단다. 거목의 위력을 알 수 있었다.
숲을 지키는 것은 좋은 나무나 거목이 아니었다. 레드우드를 지키는 힘은 뿌리의 깊이가 아니었다. 비록 연약하지만 연약한 뿌리들끼리 서로 결속하는데 그 위력이 있었다. 뿌리 깊은 나무가 요동하지 않고 견고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비록 뿌리가 깊지 않아도 연결되어 있으면 서로를 지탱해 줄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다. 레드우드가 거대한 숲을 이루고 오랜 세월 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서로의 연합과 서로를 위한 배려에 있었던 거였다.
숲속에 어둠이 내려앉고 어느새 별들이 밤을 마중 나왔다. 우리 일행은 점점 멀어지는 숲을 뒤로하고 거목들의 인사를 받으며 그 숲을 빠져나왔다. 레드우드가 거대한 숲을 이루고 모진 폭풍에도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에 마음이 머물렀다. 레드우드에 삶의 지혜가 곳곳에 숨 쉬고 있었다.
교회 공동체든 사회 공동체든 소수의 탁월한 지도자들에 의해 세워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약한 지체들끼리 연합해서 어떠한 폭풍에도 요동하지 않는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특정 지도자만 의존하다 그 지도자가 어떤 상황에 의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공동체 전체가 흔들리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은 서로의 약함을 인정하고 연합하며 세워가는 것에 위력이 있다. 탁월한 지도자가 아닌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연합하는 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다. 레드우드 숲에서 지혜를 길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