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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12월 3, 2024

[박영실 사모] 들에 피어도 꽃이다

미주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으로 수필에 등단했다. 시인, 수필가,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 수필, 동화, 소설 등을 창작하고 있다. 목회하는 남편과 동역하고 있으며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 거주하고 있다.

언젠가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출연자들이 나물을 캐서 요리하는 방송이었다. 제작진이 출연자들에게 채취할 들풀의 이름을 제시하면 팀별로 나뉘어서 채취한 재료로 요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출연자들은 그 들풀들을 찾기 위해 들판을 세심하게 살피는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갔던 들풀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이름이 없고 존재 의미도 없는 듯한 길가의 들풀들이 어느 순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모습이 카메라 앵글에 포착되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들풀들이 하루아침에 귀한 존재가 되었다.
채취한 나물들을 손질하고 요리가 시작되었다. 하나의 들풀이 다양한 요리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통해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한 것이 없음을 보았다. 뿌리는 뿌리대로, 줄기는 줄기대로, 잎은 잎대로, 열매는 열매대로, 꽃은 꽃대로 각각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해 식탁 위에 올려졌을 때 그 화려한 변신은 무죄였다. 들풀로 만든 음식을 보는 출연자들 입에서도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요리를 보고 누가 들풀로 만든 음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무가치하게 여겨지고 아무 의미도 없었던 들풀에 불과했던 존재가 사람의 시선에 들어오고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되었을 때, 그 상황은 달랐다.
어떤 들풀들은 사람의 질병을 치유하는 효능도 있었다. 척박한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특유의 화학물질을 만든단다. 항산화 기능이나 항암효과, 면역력 항진 등 유익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단다. 들판에서 자라고 있을 때는 야생초에 불과했던 존재가 신분 상승이 되었다. 초야에 묻혀 누구의 시선에도 들어오지 않았던 들풀들의 가치가 재조명되었다. 후미진 길가에 피어나는 들풀이나 들꽃도 목적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은 어떨까.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과 사명 앞에 순종하며 살 때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낮은 곳에 피어 행인들의 발에 밟혀도 신음 한번 내지 못하는 들풀들의 작은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호흡한다. 겨울바람 속에서도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피워낸 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재잘거리며 피었다. 들을 덮고 있는 야생화 중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은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고 그들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자연이 실어다 준 바람과 햇빛을 공급받아 마음껏 호흡하고 있다. 혹자는, 꽃은 계절에 따라 피는 꽃이 다르고 산의 높이에 따라 그 향기가 다르다고 했다. 향기와 색깔, 모양이 같은 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들꽃 중에 이름에 얽힌 사연이 마음 언저리에 애잔하게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며느리밥풀꽃’이라는 들꽃이다. 그 꽃은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몰래 밥을 먹다 들켜서 시어머니한테 학대당하고 억울하게 죽은 뒤, 며느리의 무덤에서 핀 꽃으로 전해진다. 들꽃들은 제각각 다양한 사연들을 품고 있겠지만 이처럼 마음 시린 사연을 간직한 들꽃이 또 있을까.
후미진 곳에서 사람과 눈길 한 번 마주하지 못한 들풀과 들꽃도 이름이 있다.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발아하고 잎이 나고 들꽃이 되기까지 감당했을 눈물과 수고를 간과할 수 없다. 그 어느 것 하나 의미 없이 피어나 자라는 것은 없다. 저마다 족보가 있고 이름이 있다. 명가의 족보에 등재되지 않았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화려한 저택의 정원에서 장미로 피어나지 않았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어느 외진 들에서 홀로 피어나 바람과 햇빛 외에 찾아주는 이 없어도 자신들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한 들꽃들이다. 자신들의 호흡만으로도 가슴 벅찬 들풀들이다.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하고 무가치하게 취급받았던 들풀들이 마음에 들어왔다. 눈을 들어 보니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그 어느 것도 무의미한 존재가 없다. 낮은 곳에 피어 행인들의 발에 짓밟히는 들풀들도 이름이 있다. 내 주변에 호흡하고 있는 소중한 것들이 나의 무관심으로 무가치하게 잠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위를 돌아본다.
자신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느끼는 들풀이나 들꽃은 없다.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는 그 순간 이미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다.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할 의미와 목적을 알고 있다. 우리는 저마다 고유의 이름을 갖고 호흡하는 들풀이며 들꽃이다. 그 존재만으로도 마땅히 존귀한 가치를 얻을 만하다. 동요 가사처럼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들판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가 꽃이다. 작은 들꽃도 바람에 흔들리며 피어난다.
같은 상황인데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결론을 유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같은 책을 읽어도 독자에 따라 밑줄 긋는 문장이 다르다. 어떠한 상황이든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상황을 보는 안목이 달라지지 않을까. 내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과 눈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하나님의 세밀하신 손길 안에서 호흡하는 모든 것이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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