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교회에 네 명의 친구들이 야고보서를 공부하던 중에 야고보서 5:16에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라는 말씀에 감동을 받고, 서로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먼저 한 사람이 고백하였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니긴 하지만 담배를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사람도 고백하였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거짓말이 자꾸만 입에서 튀어나옵니다.” 그러자 세 번째 사람도 고백합니다. “저는 아직 남의 물건만 보면 자꾸만 손이 갑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 듣고 있던 네 번째 사람이 말을 하지 않다가 세 사람이 재촉하자 “실은, 저는 남의 약점을 알기만 하면 그것을 불고 다니는 것이 제 약점입니다.”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네 명의 친구들처럼 종류는 다르지만,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항상 관용하면서도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비난하고 정죄하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죄를 지었다하더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징계를 받게 됩니다.
누가복음 13장에서도 자신의 의를 나타내기 위해 예수님께 갈릴리 사람을 비난하는 바리새인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갈릴리는 아주 시골이어서 부자나 지식인보다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로마를 무력으로 전복시키려는 열심당에 속한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과 같은 절기가 되면 수없이 많은 순례객들이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려고 모이곤 하였습니다. 절기 제사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보면, 절기에 제사에 드리는 양의 숫자가 22만 마리가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보니, 제사장들이 그 많은 짐승을 잡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자,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직접 짐승을 잡아 피를 받고 각을 떠서 제사장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절기 제사를 위해 갈릴리에서 열심당 사람들이 성전에 왔는데, 그 소식을 들은 빌라도가 그들이 일으킬 수도 있는 폭동을 사전에 막기 위해 군사들을 이끌고 성전에 난입하여 그들을 살해하는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사를 드리던 갈릴리에서 온 열심당 사람들의 피가 제물의 피에 섞이는 사건이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열심당이 추구하는 무력 사용을 반대했던 바리새인들은 이 사건이 생긴 이유가 갈릴리에서 온 열심당 사람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 심판 받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두어명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이 사건을 말하며 자신들의 의를 자랑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로마가 주관한 실로암에 망대를 세우는 일을 하다가 망대가 무너져 죽은 열여덟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말씀하시면서 바리새인들에게 ‘이들이 다른 사람보다 죄가 더 있다고 생각하냐’고 물으시게 됩니다. 왜냐하면, 한 개의 죄를 지었든지 열 개의 죄를 지었든지 사람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있기 때문에 주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비교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나아!’, ‘난 저 사람보다 착해!’, ‘난 저 사람보다 의로워!’라는 식의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한 개인이 죄에 대해 얼마나 회개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결한 모습을 갖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회개하다’론 번역된 헬라어가 문법상 현재형으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죄에 대한 회개를 지속적으로 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의 변화뿐만 아니라 온 인격과 삶을 하나님께 돌이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스스로 죄를 깨달아 회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와 그리스도를 비웃으며 “목사님, 교회에서는 늘 죄의 짐이 무겁고 그것을 벗어 버려야 한다고 하시는데, 저는 아무 짐도 못 느끼거든요. 도대체 그 죄의 짐이라는 게 얼마나 무게가 나갑니까? 한 50파운드 정도 나가나요? 아니면 백 파운드쯤 되나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목사님은 “선생님, 여기에 죽은 사람이 누워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에 그 죽은 사람 위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는다면, 과연 죽은 사람은 그 짐의 무게를 느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못 느끼지요. 천 파운드의 무게를 올려놓는다 하더라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하자, 목사님은 그에게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죄 가운데서 죽어있는 상태이기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해 주었다고 합니다.
바로 성령님께서 주시는 회개의 영을 받을 때에 비로소 자신의 죄를 깨달아 온전히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의 죄를 보기보다 먼저 자신의 죄를 살펴보아야 하고, 남을 탓하기보다는 하나님의 긍휼을 먼저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