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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4월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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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권 목사] 게제르에서 (4)

김세권 목사
조이풀 한인교회 담임

게제르에 관해서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해야 한다. 농사월력 옆에 서서, 그걸 나름 해석하느라 진땀을 뺀 후에 이미 언급한 솔로몬 병거성을 보기 위해 조금 걸었다.

중간에 내리막 길이 있어서 종종 걸음으로 내려섰더니, 희한한 게 눈에 들어왔다. 아주 옛날에 가나안 사람이 만든 주상(마쩨바)가 거기 죽 늘어서 있었다.

성경에 주상이란 단어가 꽤 나오지만, 눈으로 실체를 확인하기 전까진 구체적인 그림이 머리에 없었다. 주상(마쩨바, 복수로는 마쩨봇트)은 이른바 하늘을 향해 세워놓은 돌을 뜻한다.

마쩨바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나 현현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뭔가 기념할만한 일이 있으면 세우는 것이었다.

바알신앙이 이스라엘에 들어오기 전에는 돌이 세워진 당시에 하나님이 임재하셨단 의미가 마쩨바에 들어 있었다.

이를테면 야곱이 벧앨에서 베고 잤던 돌을 아침에 하늘을 향해 세운 것이 바로 그런 마쩨바였다. 베개 대용이었다면 집채만한 돌은 아니었을 터다. 그저 머리 밑에 베기 알맞은 크기의 돌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후대에 가면 이게 조금 달라졌다. 바알이 가나안에서 판을 치면서, 그가 주상의 모습으로 둔갑해서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돌 뭉치들은 그만 우상단지가 되었다. 돌은 바알을 상징하고, 나무는 아세라를 의미하는 변이가 일어났다.

하나님이 이를 미워하신 건 당연하겠다. 제대로 된 왕들은 주상을 타파하려 열심을 냈고, 이런 행동은 하나님의 뜻과 합한다고 성경이 기록했다. 당연히 주상을 그냥 내버려두고 백성이 거기 절하는 걸 대충 정략적으로 이용해먹은 놈들은 악한 왕 무리였다.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들이 너희 중에 올무가 될까 하노라.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상을 찍을지어다” (출애굽기 34:12-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 .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 . . 그들의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 (신명기 7:1-5)

“그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서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신명기 12:3)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a standing image of stone) 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레위기 26:1)

“그가 또 애굽 땅 벧세메스(태양의 집)의 주상들을 깨뜨리고 애굽의 신들의 집을 불 사르라 하셨다 할지니라” (예레미야 43:13).

뭐 이쯤이면, 주상이 역사 속에서 갖는 의미와 변천사를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다. 그 전에야 하나님의 임재를 기념하기 위해서 돌을 세웠지만, 나중에는 그 돌이 바알을 상징하는 게 되었다. 그럼 나쁜 것이다.

좋은 일이 얼마든지 나쁜 걸로 변하는 게 삶의 이치이다. 어찌 마쩨바만 그렇겠는가.

성경을 보면 벧엘이란 동네 역시 왕년에는 좋은 곳이었지만, 거기 황금송아지가 놀러간 다음부턴 아주 악한 땅의 대명사가 되지 않았던가.

이렇든 좋은 것이 삽시간에 나쁜 것으로 변한다. 그래서 신앙적으로 정신 차려야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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