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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4월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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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권 목사] 헤브론

김세권 목사
조이풀 한인교회 담임

브엘쉐바를 떠나서 족장로를 따라 헤브론으로 올라갔다. 헤브론은 브엘쉐바에서 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 옛날에 아브라함이 양을 치면서 이 길을 오르내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아브라함 할배가 터덜터덜 걸은 길을 나는 차로 간다.

이스라엘에 오면 어떤 건물을 보는 것보다, 길을 다녀봐야 한다. 건물은 치장을 해놓고 역사를 변색시키지만, 길에서 느끼는 공기는 아주 다르다. 그걸 구약 사람들도 호흡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브엘쉐바와 헤브론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우기(가을에서 겨울)에는 브엘쉐바에서 살았을 것이고, 건기가 되면 숲이 있는 헤브론으로 올라가서 살지 않았을까 싶다.

사막지역에서 산지로 들어가는 것은 곧 웨스트 뱅크로 들어감을 의미하기 때문에 검문과 검색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생존에 본능 같은 것이 서려있다. 나라 없이 오랜 세월을 고생하고, 지금도 적대적인 세력에 둘러싸여 있으니, 그건 당연하다. 생존은 절대적으로 힘과, 세심하고 철저한 관리를 통해서만 지켜진다는 보편적인 법칙을 확인한다.

어쨌거나 길을 보니 그냥 광야에 나있는 도로일 뿐이다. 돌(라임스톤)이 많고, 야트막한 높이의 관목들이 듬성듬성 나있다. 양떼랑 친구하면서 다닌다 해도, 걸으려면 아주 한심했겠다. 사천년 전에 아브라함은 이곳을 지났다. 가족, 양떼와 함께 40 킬로를 걸어서 갔다. 아브라함은 얼마나 자주 이 길을 다녔을까? 아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을 거다.

창세기 22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브엘쉐바에서 모리야산(유대 전승에서는 예루살렘)으로 이삭을 데리고 갔다. 약 80-90km의 거리다. 그들은 사흘길을 갔다. 하루에 30km는 족히 걸은 셈이니, 정말 대단한 일이다. 성인 남성이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약 20km 남짓이라니 정말 그렇다. 왜 그리 무리를 했을까? 아마 아브라함이 열받아서 땅만 내려다 보며 걸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을 바쳐야 하는 길이었다. 얼마나 속이 뜨거웠을까? 아마 그는 걷는 것 외에는 할 일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따라가는 이삭은 유대 문헌에 의하면 37이었다고 한다. 의문은 가득했겠지만, 아버지가 입마저 닫았으니 그는 물어보지못 했을 거다. 그 길을 나도 지금 간다.

막벨라 굴은 족장로 옆에 있다. 왜 라헬은 길에서 죽었는데, 길 가에 있는 가족 매장지로 가지 못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그녀는 드라빔 사건에서 보듯이 메소포타미아 우상 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 벧엘 근처에서 보인 야곱의 행동거지를 보면, 그녀에게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막벨라에 묻히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라헬의 신앙적 모습을 가족들이 받아들이지 못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족장로를 따라가면서 산 위에 정착민들이 집을 지은 것을 본다. 유대인은 전통적으로 산 위에 집을 지었다. 이유는 세 가지다: (1) 우선 전쟁이 많았기 때문이다. 산 위에 거주지가 있으면 싸움에 유리하다; (2) 비가 오면 농사를 짓는데 (이스라엘의 밭은 지금도 거의 천수답이다), 농사는 산 밑에서 짓고, 거주지는 산 위에 지었다; (3) 이스라엘은 기후가 덥기 때문에, 산 위가 시원해서 집을 산 위에 짓는 것이 전통이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그분이 말을 꾸며서 한 건 아니었다.

헤브론에는 군인이 주둔하고 있었다. 요단 서안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1) A는 완전한 아랍사람들 자치구역; (2) B는 아랍사람들과 이스라엘이 공동관리;(3) C는 이스라엘이 단독으로 관리한다. B와 C 지구에만 유대인이 들어가서 정착해서 산다. 원래 헤브론 막벨라 굴 근처는 상당히 위험한 곳이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티파다 때문이었다. 아랍인 봉기가 있기 전에는 무슬림과 유대인이 막벨라 굴을 함께 순례했지만, 치안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인티파다 후에는 이스라엘 군이 주둔하면서, 막벨라굴 근처의 아랍인들을 퇴거시켰다. 실제로 막벨라 굴 근처에는 길가에 이스라엘 국기가 주욱 꽂혀서 나부낄 뿐이고, 사람은 별반 없었다. 정착해서 사는 유대인과 정책에 순응하는 아랍사람만 조금 있을 뿐 대부분 빈집이었다.

역설적으로 이 바람에 치안은 아주 좋아졌다. 그래도 한국인들은 이곳에 안온단다. 위험하단 인식이 있어서 여긴 안들린단 거다. 정말로 위험한 게 뭔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드디어 막벨라 굴(지금은 회당)에 지어놓은 건물에 당도해서,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로 들어서는 입구에 ‘쯔다카 박스’가 보인다. 이른 바 남들을 돕는 자선함 같은 건데,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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