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달라스를 강타하고 있는 오미크론의 파도는 필자 또한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목이 따끔 거리더니 다음날 몸이 가누기 어려울 만큼 힘이 들었습니다. 새벽기도회가 끝나자마자 집에 돌아와 만사를 제쳐 놓고 몸져 누었습니다.
가끔씩 찾아오는 몸살이려니, 하루 정도만 쉬면 괜찮아 지겠지 생각 했는데, 그 다음날은 더 힘들었습니다. 간신히 일어나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또 다시 집에 와서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전에 교회 집사님 한 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내도 몸이 좋지 않아 검사를 했는데, 코로나 양성 판정이 나왔으니 저도 검사를 받아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집에 있는 진단키트를 찾아 검사를 하려는데, 갑자기 끔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양성반응이 나오면 어떡하지? 부흥회가 내일인데, 코로나로 격리를 해야 한다면 부흥회는 어떡하지?
그때부터 망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진행하는 교회 가장 큰 행사인데, 보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확진을 받아 격리에 들어가 담임목회자 없이 부흥회를 진행한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행사를 취소한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일정에 관해 신문광고가 나갔고 강사 목사님의 비행기 표부터 호텔까지 모두 취소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교인들 앞에 뭐라고 말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검사를 하지 말고 조용히 지나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유혹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정직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교회에는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은데 아무리 오미크론이 경미하다 하더라도 속여서 바이러스 전파자가 되는 것은 옳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자” 결정하고 일단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결과는 두 줄이었습니다. 매뉴얼을 보니 확진이 맞았습니다.
정말 큰일이었습니다. 몇 시간을 고민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아픈 것을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결국 부흥회를 연기하는 어려운 결정을 하고 강사 목사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다행히도 강사 목사님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괜찮다고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비행기 표 취소하는 문제를 알아보겠다고 하셨고 얼마 후에 항공사에서도 100% 크레딧을 제공해서 일년 안에만 비행기를 이용하면 된다고 알려 오셨습니다.
코로나 확진 후 격리상태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몸이 빨리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니 겨우 입맛도 돌아오고 컨디션도 좋아져 교회에 돌아가기 위해 진단키트로 테스트를 했습니다. 미국 CDC 지침은 5일간 격리입니다.
그래서 5일만 지나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양성반응이 나왔습니다. 다음날 좋아지겠지 생각 하면서 검사 키트를 어렵게 빌려서 테스트를 했는데 또 양성반응이 나옵니다. 결국 10일이 지난 금요일에는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날 아침까지도 양성이 나왔습니다.
어떡하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7일이 지나면 전파력이 없다고 하는데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주일 전이었던 토요일 오전에야 음성임을 확인하고 교회로 와서 주일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는 저를 어쩔 수 없이 멈춰야 하는 상황으로 몰아갔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답답하고 힘이 들었습니다. 질병에 대한 불안보다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찾아온 불안이 더 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거들 떠 보지도 않았던 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너무 바쁘다 보니 바쁜 줄도 모르게 살던 저를 하나님은 강제로 쉬게 하심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무엇에 그리 바빴나? 무엇을 위해 그렇게 분주했나? 하는 생각들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목사님의 유투브 강의를 통해 안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창조 설화는 신들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가 자기들이 일하고 싶지 않아 쉬고 싶어서 허드렛일을 맡기기 위해 사람을 창조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군주의 통치이념을 신화를 통해 백성들에게 심으려했던 지도자들의 의도가 담겨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은 하루 의무적으로 안식일을 주셔서 쉬게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식일 명령은 인간을 신의 영역에 동참케 하신 것이 안식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계명으로만 인식했던 안식일의 의미를 축제로의 초청으로 재해석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철저하게 일을 많이 해야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서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코로나는 이제는 네 일을 멈추고 잠시 나를 생각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일 수도 있습니다.
쉬어가면서 도끼를 가는 나무꾼이 쉼 없이 나무를 찍는 나무꾼보다 더 많은 나무를 자를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쉼은 낭비가 아닌 새로운 재충전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닥치는 불행은 그래서 때로는 행복의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