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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1월 8, 2024

[이기욱 목사] 그러므로 감사 VS 그러나 감사

이기욱 목사 알링턴 사랑에 빚진 교회

‘감사’를 크게 두 종류로 나누면 “그러므로”의 감사와 “그러나”의 감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의 감사는 일상생활 가운데서 발견하는 감사입니다. 예를 들어 옆에 있는 사람을 보니까 많이 아파요. 그런데 나는 안 아파요. 그래서 깨닫는 겁니다. ‘그러므로 감사’ 하는 겁니다. 옆에서 밥을 굶습니다. 그런데 나는 밥을 먹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수 있는 겁니다. 옆에서 유틸리티 요금을 못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기가 끊기고, 가스가 끊기고, 더운물도 사용 못 하고 있습니다. 에어컨도 사용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더운물을 사용하고 에어컨도 틀 수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감사한 겁니다. 사실 이것을 깨닫는 것도 엄청난 겁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24년, 올 한 해도 살아오면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생각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가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감사’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도 대단한 감사입니다. 왜냐하면 당연한 것이 감사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숨을 쉬고 있고,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옆에 사람과 대화할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악수할 수 있고, 점프할 수 있고, 춤출 수 있고, 나에게 말 걸어주는 지체가 있습니다. 사실 당연한 것 같지만 옆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못 듣고,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말 걸어 주는 사람 없이 혼자 외톨이고, 또 몸이 불편해서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감사가 바로 ‘그러므로 감사’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그렇게 감사의 조건이 너무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을 하며 살아갈 때가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면서도 마치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살고 있으니 어떻게 생각해 보면 ‘배은망덕’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는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상에 감사를 찾아보면 너무나 감사할 것이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감사’는 조금만 주위를 돌아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감사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러나 감사’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가 바로 ‘그러나 감사’라 볼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것이 ‘성숙한 감사’입니다. 이것이 ‘진짜 감사’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크리스천의 감사’라 이야기할 수 있는 겁니다.
쉽게 말해 “그러나 감사”는 “그러므로 감사”와 상황이 바뀐 겁니다. 예를 들면 옆에 사람은 너무 멀쩡한데 지금 나는 너무 아픕니다. 옆에 사람은 밥을 먹는데 나는 지금 굶고 있습니다. 나는 돈이 없어 유틸리티 요금도 못 내고 그래서 따듯한 물로 샤워도 못하고, 에어컨도 못 트는 신세입니다. 그런데 옆은 그것을 누리며 너무나 잘 살고 있는 겁니다.
사실 감사가 불가능 한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내가 어렵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그 사실 하나만으로 감사를 드리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그러나 감사”입니다. 절망의 상황에서 오히려 감사의 찬양을 부릅니다. 그것이 성경 ‘하박국 서’에 나와 있는데 하박국 서의 상황이 지금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입니다.
모든 것이 다 부족합니다.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즉, 세상 모든 게 다 사라지고 모든 것을 다 빼앗긴다 해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그것만으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러나 감사’입니다.
사실 세상에 겉에 보이는 조건들은 시간이 가면 다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그런 것들이 기쁨과 감사와 찬양의 조건이 된다면 언젠가는 실망하게 될 거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기쁨도 감사도 찬양도 다 잃고 말 거라는 겁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픈 상황에서도 우리가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다면 부족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다 된 거 아닐까요? 그 이상 바랄 게 무엇입니까? 성공한 삶 아니겠어요? 내가 참으로 감사할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그분을 믿는 믿음 때문이라는 것이 바로 ‘그러나 감사’입니다.
자장면을 만들어 다니면서 전국에 소외된 사람을 섬기고 있는 김중교 선교사님 이란 분이 계십니다. 자장면 전도사라고 불리기도 한 분이십니다. 본래 자동차 부품 공장 사장이었는데, 어느 날 공장에 불이 나서 공장이 다 타버렸습니다. 전 재산을 투자했는데 공장이 잿더미가 되고 나니까 다 없어진 겁니다. “이젠 내가 살아갈 어떠한 소망도 없다. 죽자.” 그래서 두 아이들과 자기 아내와 함께 화물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그리고 “자~ 죽자” 하면서 확 핸들을 틀려고 하는데, 갑자기 마음속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 어느 설교 시간에 들은 말씀 “그러나~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 차를 세워 한참을 울고 나서 보니까 그제야 옆에 있는 아내와 두 자녀가 보이더라는 겁니다. “나에게 이 아름다운 가족이 있는데… ” 그러고는 그 트럭에다가 자장면 만드는 기계를 싣고 전국을 다니면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감사를 나누고 복음 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감사’ 깨닫는 만큼입니다. 그 만큼 감사와 은혜가 넘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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