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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4월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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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희 교수] “학생 영화에 드러나는 젊은이들의 고민”

전창희 교수 UT알링턴 영상학과 교수

어두운 화면이 밝아지면 조그만 아파트 침실에서 침대에 앉아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 보입니다. 손에 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는 젊은 여성의 모습 넘어 전화기에는 “Dad (아빠)”라고 적혀진 글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지만 무언가 자신이 없어 보입니다. 마침내 용기를 내어 전화기의 통화 버튼을 누르면 전화기 신호 소리와 함께 화면은 다시 어두워 지면서 영화의 제목이 서서히 떠오릅니다.
모처럼 이번 학기에 대학생들의 졸업 작품을 지도하는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주로 대학원생들의 수업을 하다 보니 자주 학부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적었는데 이번에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평소보다 좀 많은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하면서 이 수업에서 총 15편의 단편 영화가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이제 이 수업을 끝내면 곧 졸업을 하고 사회로 나가야 하는 4학년 학생들이라 이 졸업 작품 수업의 무게는 다른 수업들 보다 그들에게 좀 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첫 번째 수업에서 저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이번에 여러분들이 만드는 작품이 마지막 작품은 아니겠지만, 학생으로서는 마지막 작품이기에 너희들의 진심을 담아 의미 있는 영화를 만들기를 기도한다. 이 작품이 여러분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마일스톤 (Milestone) 이 될 것이니 어떤 내용을 담아낼 것인가 깊이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
창조된 영상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인생과 경험, 그리고 생각이 투영되어지기 마련입니다. 거창하게 세계관이라고 말하기까지는 그렇지만 현재 대학 4학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고민이 만드는 작품 속 내용에 담기기 마련입니다. 첫 수업이 끝나고 각 학생들이 영화의 기본 스토리를 구상하여 발표를 하는데, 그 안에 그들의 진실된 시선이 담겨있지 않으면 저는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면을 합니다.
예를 들어 기존 헐리우드 영화에 많은 영향을 받아서인지 몇몇 학생들의 영화 소재는 갱스터 (Gangster), 마약, 액션 영화 등 우리가 상업 영화에서 흔히 접하는 내용들입니다. 그러면 저는 그 학생에게 질문을 합니다. “네가 정말 갱스터의 삶을 알아? 그저 어디선가 본 내용을 가져 다가 베끼는 거라면 아예 시작도 하지마. 네 삶 속에 경험했고 치열하게 고민해 온 내용으로도 진실된 영화를 만들기가 어려운 건데, 이런 소재로 영화를 만들면 더 어렵겠지.” 그러면 진지하게 제 충고를 받아들여 새로 고민하는 학생들도 있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결국 끝에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결정을 하는 것이고, 그 책임도 함께 감당하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많은 토론과 고민의 시간들을 거쳐 이제 학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만큼 대부분의 학생들은 촬영을 끝내고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1차적으로 편집된 영화들을 함께 보고 토론하면서 제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짐을 느끼게 됩니다. 저의 조금은 “강압적인” 권면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인생과 경험 속에서 영화의 줄거리를 창조했습니다. 물론 몇명의 학생들은 끝까지 헐리우드 영화의 내용을 흉내내 보려다 이제 편집을 하면서 본인의 잘못된 선택에 후회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것 또한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되기를 저는 기도합니다.
용기를 내어 아빠에게 전화를 건 젊은 여성. 그리고 마침내 아빠는 전화를 받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그 순간 영상은 다시 암전되며 마지막 자막이 흐릅니다. 어떤 대화를 두 사람이 나눌지는 그저 관객의 상상 속에 맡겨집니다. 전화를 건 딸과 그 전화를 받는 아빠의 모습 사이에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안에서 관객은 이 여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이 여성이고, 그와 결혼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 사실을 아빠에게 용기를 내어 말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성애의 문제에 관한 영화입니다.
다른 학생들의 졸업 작품에도 창작자의 고민이 녹아 있습니다. 이민자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부모와 언어의 장벽으로 진지한 대화 조차 못하는 주인공의 방황. 혼자된 어머니 아래 살아오면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그러면서 서서히 알콜 중독자가 되어가는 젊은 청년의 이야기. 부모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 약에 의존하게 된 주인공의 머리 속 상상의 이야기. 주어진 하루의 모든 시간 속에 언제나 귀에 헤드폰을 꽂고 현실속에서 도망치고자 하는 어느 소녀의 고민 등등… 이 전부가 만든 사람의 실제 이야기는 아니지만 창조된 이야기의 세계 속에 저는 그들의 고민을 봅니다.
어쩌면 이것이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만의 고민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미국의 많은 청년들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흔히 기성 세대라고 이야기하는 세대에 속한 저는 이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는 걸까? 고민하고 기도합니다. 그저 영화 제작의 기술과 미학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인생의 문제를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이번 학기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학교 사무실의 컴퓨터 앞에 앉아 마지막 수업을 준비합니다. 기도합니다. 아마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나누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제 개인의 경험을 나누면서… “여러분, 이 짧은 영화 한 편을 만들기까지 걸어온 이 여정이 여러분들에게 치유의 시간도 되었기를 바란다. 영화가 멋지게 완성이 되었건, 아니면 처절한 실패를 경험해야 했던 간에 이제 그것은 우리 인생의 또 다른 경험으로 남았다.
이제 미래는 이 경험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 것에 달려 있다. 무언가 배운 게 있다면 꼭 기억하고, 무언가 실패한 게 있다면 그것에 다시 도전해 보자. 너희들이 보다 많은 인생의 경험을 통해 성숙해 간다면 그것이 바로 너희들 미래의 영화에 투영되게 될 것이다.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그렇게 살아보려 했는데, 그 여정에서 만난 분이 있다. 너희들이 아직 못 만났다면 꼭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 너희들이 진짜 영화를 만드는 것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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