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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월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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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키움 OTA World 장학금’ 수여자의 간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2)

김한수 전도사(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M.Div)

그 날 저녁 그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그 학교의 설립자이자 학교 리더이신 목사님께서 우리 가족을 만나고 싶어하셨다. 다음날 그 목사님을 만났을 때 우리는 정말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일주일 전 그 학교의 리더십 회의에서 기도를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속 Korean Department, Korean Staff에 대한 마음을 주셨다고 한다. 그 Miri라는 도시는 한국사람도 거의 없고 그 학교는 한국 사람이 올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곳이라 의아했는데, 우리 가정이 마침 그 학교를 방문하여서 목사님도 놀랐고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심을 확신하고 계셨다. 나 또한 말레이시아에 와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나누자 우린 서로의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하심에 대해 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목사님께서 나에게 바로 학교의 리더 자리를 제안한 것이었다. 처음 만난 날 학교 리더 자리를 제안받아 난 너무 당황스러웠다. 대학교때 과외 몇 번 해본 것이 다인 나에게 학생 100명 가까이 되는 학교의 리더를, 그것도 그저 평신도였던 나에게 크리스천 스쿨의 리더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자리였다.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컨펌을 주실 것이니 기도해 보고 결정하라고 말했다. 정말 이런 모든 상황이 너무 놀라웠다. 금식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들이 내 삶속에서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사역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기도의 컨펌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도 중에 환상이 보였다. PACTS라는 글씨들이 보이더니 그 중에서 P가 사라지고 ACTS만 남았다; “너의 사역이 이 학교에서 시작할 것이다.” 너무 소름이 돋았다. 말레이시아에 처음 왔을 때 내 마음속에 들렸던 그 음성이 이 환상을 통해 다시 들렸다. 난 바로 목사님께 전화를 했다. 목사님은 학교 이름을 지을 때 People of Acts라는 숨은 의미를 넣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는데 그걸 보여주셨으면 하나님께서 컨펌을 해주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난 PACTS Schools의 리더 자리를 맡게 되었다.
한편, 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비자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주실 지 궁금했다. 학교를 통한 워킹 비자, 관광청을 통한 특별 비자 등 여러가지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엔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비자 문제는 해결되었다. 학교에서 사역을 시작하고 몇 달 안 지나서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다. 모든 외국인들에게는 비자의 만료 상태와 상관없이 출국할 때까지 모든 비자가 유예가 되었고, 결국 우린 2년 넘게 그 곳에서 나중에 학업을 위해 한국을 거쳐 미국에 갈 때까지 비자문제 없이 말레이시아에서 머물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비자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는 약속은 비록 슬프고 참혹한 현실이 반영되었긴 하였지만 정말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실현되었다.
PACTS Schools에서 나와 아내는 정말 충성되게 일했다. 리더로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그리고 매주 리더십 기도와 예배를 통해 우리는 많이 성장하고 있었다. 아내 또한 신앙의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 팬데믹 동안에는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밥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매일 200인 분의 도시락을 제공하는 등 지역 사회를 위해서도 힘썼다. 그러나 팬데믹이 시작되고 나서 학교의 재정상황은 급격히 안 좋아졌고 우리는 학교로부터 급여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우리의 재정을 학교를 위해 써가며 사역을 했다. 2년 정도가 지나고 학교에서의 내 사역을 되돌아봤다. 뭔가 중요한 일을 항상 빼먹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학교 리더로서 다른 리더십과 선생님들에게 또 가장 중요하게 학생들에게 영적으로 아무 영향력을 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언어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평신도로 사역을 시작한 나에게는 학생들을 제자화 할 만한 아무런 성경적 지식도 성경적 전략도 없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훈련 받지 못한 사역자로서의 한계를 명확하게 느끼고 있었다. 예전에는 열정만 있으면 신학 공부를 꼭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영적, 또는 선교 훈련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현장에 나와 있는 것이 중요하지 그런 것들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나의 그런 생각들이 교만이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신학에 대한 마음과 하나님께서 나를 신학의 길로 부르심의 대한 확신은 더 커져만 갔다. 그리고 실제로 난 절실하게 배움이 필요했다.
그렇게 난 2년이 넘는 PACTS Schools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신학교로의 부르심에 순종하기로 했다. 그 결정을 할 즈음 그 결정을 망설이게 할 만한 말도 안되는 유혹도 있었지만 우리는 세상 부귀 영화를 모두 뒤로 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그저 순종하기로 했다. 그러나 큰 문제가 있었다. 4년 가까이의 말레이시아 생활을 하면서 어떤 수입도 없이 계속 돈을 쓰기만 해서 한국으로 돌아갈 때 즈음엔 통장에 달랑 5만원 밖에 남질 않았던 것이다. 월세를 낼 돈도 비행기 표를 살 돈도 없었다. 우리는 가진 것을 하나씩 모두 팔기 시작했고 아내는 김밥을 말아 팔았다. 그렇게 우린 마지막 달 월세를 내고 비행기표를 어렵게 사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현실은 절망적이고 참담했다. 하지만 우린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기쁨속에 오히려 부유한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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