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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4월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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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욱 목사] 목사님~ 자꾸 마음이 찔려요

이기욱 목사
알링턴 사랑에 빚진 교회

하루는 집사님 한 분이 제게 와서 “목사님~ 저는 요즘 설교를 들으면 그렇게 마음이 찔려요. 다 내 이야기 같아서 많이 찔립니다. 전에는 목사님이 이 말씀 하시면, 아~ 이 말씀은 누가 들으면 좋겠다. 오늘은 저 말씀을 하시네, 저 말씀은 아무게 성도 들으라고 하시는 말 같다, 그랬는데 요즘은 다 제 이야기 같아요” 하고 말하시는 겁니다.
문득 사도행전 2장 37절 말씀이 떠 오르는 겁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이라고 말씀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성령이 충만해 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목숨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 때 그 복음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 든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 가운데 고백하는 말이 바로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입니다.
오랜 세월 한 자리에서 19년째 목회를 하다보니, 우리가 신앙 생활 하는 가운데 은혜를 받고 그래서 믿음이 성장하고 있는 증거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찔림이 있다”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찔렸으면 좋겠다, 저 사람은 좀 찔려야 하는데…” 가 아니라 내 자신에게 찔림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말씀에 둔감한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예배를 형식으로 드리는 사람들에게는 찾아 볼 수 없는 현상입니다.
어떤 말씀을 듣든지 그 말씀에 은혜를 받고 “아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은혜입니다. 바로 “찔림”이 있다는 말입니다. “찔림” 이라는 단어는 “깊숙히 들어왔다”는 말입니다. 뭐가 들어 온 겁니까?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말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의 마음에 깊숙히 들어 왔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우리 삶에 깊숙히 들어 왔다는 겁니다. 착한 일을 행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우리 생활 가운데 깊숙히 들어 왔다는 겁니다. 또 “마음에 찔려”는 “마음을 도려내는”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심했던 내 마음이 도려지는 겁니다. 하나님께 불평했던 내 마음이 잘려져 나갑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 말씀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은혜가 깊숙히 들어오고, 은혜를 받기 시작하니 의심과 불평이 잘려져 나가더라는 겁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결국 찔림이 은혜의 증거이고 믿음이 성장하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분명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말씀에 은혜를 받고 못 받고는 우리의 마음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결국 자신의 심령을 살펴 봐야 한다는 겁니다. 아마도 십중팔구는 현재 신앙의 상태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별로 좋지 않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니면 아직 하나님의 은혜를 모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아직도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다보니 하나님 말씀이 선포 되도 자기가 받아 드리지 못하는 것은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이라도 다 쳐 내게 됩니다. 말씀이 꽂히지 않으니 찔림은 없는 겁니다. 은혜 없이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목사님~ 찔리니까 자꾸 회개하고 반성하게 되네요. 제가 이상해 지는 거는 아니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말씀이 가슴을 찌를 때가 우리들에게 진정한 감사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회개의 삶,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꾸어 가시길 원하시는 싸인이라는 겁니다. 결국 찔림은 그러한 하나님의 신호이고 은혜라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아빠 닭과 아들 병아리가 대화를 합니다. 아들 병아리가 “아빠, 우리는 왜 벼슬이 있어?”하고 물으니까 아빠닭이 “그건 적들에게 우리가 무섭다는것을 과시하기 위해서야!” 아들 병아리가 또 묻습니다 “그럼 주둥이는 왜 이렇게 뾰족하고 날카로워?” 그러자 “응~그건 적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해서 혼내주기 위해서야!” 아들 병아리가 계속해서 “그럼 목소리는 왜 이렇게 커?” “응~그건 적들에게 겁을 주고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지!” 이야기를 다 들은 아들 병아리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런데, 아빠~ 그런 힘을 가진 우리가 지금 닭장 안에서 뭐하고 있어?” 하더라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이 있고, 또 남들보다 잘 난 것이 있고, 또 남들보다 가진 것이 많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육체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인생들 입니다. 그렇게 육체 안에서 살다가 죽게 되는 인생이라는 거지요. 결국 찔림이 있을 때 우리 인생이 그저 육체의 울타리에서 살아가는 그런 인생이라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아빠~ 그런 힘을 가진 우리가 지금 닭장 안에서 뭐하고 있어?” 바로 인생의 진지한 고백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마음에 찔림이 있고 난 후의 고백이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
은혜를 받았는데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씀 가운데 우리의 죄가 드러났는데 그럼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국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그런 질문들이 우리 마음 가운데에서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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