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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4월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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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실 수필가] 작은 여우

미주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으로 수필에 등단했다. 시인, 수필가,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 수필, 동화, 소설 등을 창작하고 있다. 목회하는 남편과 동역하고 있으며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 거주하고 있다.

소아시아로 불리는 튀르키예는 유럽과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오묘한 나라다. 지난 몇 년 동안 중동 지역과 튀르키예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 난민들을 여러 차례 섬기고 왔다. 튀르키예는 지중해와 흑해, 에게해에 둘러싸여 있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이다. 주변의 유럽 국가나 중동 국가에 비해 비교적 자원이 풍부하고 천혜의 자연 풍광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나라다. 튀르키예 경제 중에 관광업이 70% 이상을 차지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동서양의 문화와 역사를 공유한 나라, 유럽과 아시아의 연결고리인 튀르키예의 표정은 다양했다. 지중해와 흑해, 에게해가 만나는 지점인 마르마라 해협을 마주했다. 찬란했던 역사와 문명의 흔적을 담고 있는 해협 주변의 건축물들과 풍경에 시선이 흘러갔다.
마음이 머무는 여러 풍경을 뒤로하고 우리 민족의 역사와 오버랩되는 이스탄불 군사박물관을 방문했다. 군사박물관에 전시된 모습은 마치 그 앞에서 전쟁을 목도하는 듯했다. 포탄이 날아와 내 앞에 떨어지는 듯한 착각을 했다. 바로 옆에서 대포 소리와 총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전시관 초입에서 시선이 머문 곳은 갈리폴리 전투에서 사용한 거대한 대포였다.
박물관에 그리스관과 한국관 전시관이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전 세계에 한국전 참전 요청을 했을 때, 튀르키예가 가장 먼저 응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중해의 화려한 풍경들 너머 유럽과 중동 역사에 남겨진 상흔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듯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찬란했던 헬레니즘 문화의 흔적과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튀르키예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지인 이스탄불은 이슬람 상징의 면모를 더해갔다. 이스탄불 군사박물관은 터키군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만든 박물관이다.
그곳을 방문한 날은 유치원 아이들부터 고등학생들까지 현장 학습을 온 날이었다. 안내자에 의하면 튀르키예 정부는 튀르키예가 건국된 과정에 대해 어린 학생들도 특별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다는 거였다.
그곳에서 역사 전문가인 지인을 통해 그 민족이 세워진 역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으며 마음이 머문 사건이 있었다. 1,453년에 유럽 역사를 결정지은 두 가지 사건이 있는데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 전쟁과 동로마 제국의 멸망이었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세계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했다. 튀르키예가 건국되는 과정에서 오스만이 콘스탄티노플과 대립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비잔틴 병사가 성 밖을 나갔다 오면서 비밀 통로인 작은 출입구를 막지 않고 들어왔다. 그것을 주시하고 있던 적군이 그 틈을 타서 성문을 열고 공격했다. 난공불락 같았던 성은 적군에 의해 점령당했고 비잔틴 제국이 함락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 민족의 존속 여부가 한 병사의 작은 실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각인되어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그로 인해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하고 입성했다. 그때 튀르키예(터키)로 개명했고 이슬람의 종주국이 되었다. 이것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판도가 바뀌는 사건이었다. 그 이후에 현재 튀르키예의 수도인 앙카라로 천도했다.
개인이든 어떤 민족의 역사를 보아도 큰일에서 실패하거나 패망하지 않았다. 작은 실수, 그냥 간과하고 스쳐 지나간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 일들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역사는 누가 어떤 각도에서 어떤 시점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역사를 기록하는 관점이 달라진다. 표면화되지 않은 현상 이면에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사건이 있었을 터였다.
군사박물관에서 전시관을 마주했을 때, 무거운 군장을 메고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스러져 갔을 병사들의 절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빗발치는 포탄과 총탄 속에서 벗겨진 군화를 미처 챙기지 못한 무명 병사의 군화에 피어나는 들꽃의 모습을 상상하면 전장에서의 다급했던 상황들이 떠오르는 듯도 했다. 총알이 뚫고 간 헬멧의 주인은 누구일까 상상하면 그 전장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포탄을 맞으며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스러져 갔을 어린 병사들의 모습, 그 순간 떠올랐을 가족들의 얼굴들, 전사 소식을 접했을 가족들의 충격과 슬픔, 이 모든 장면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이스탄불 군사박물관을 방문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삶의 변곡점 지나는 동안 작은 여우를 잡지 못해 포도원을 허무는 일들을 종종 경험했다. 개인이나 교회 공동체, 민족 공동체의 울타리를 허는 작은 여우를 민감하게 분별해야 하리라. 튀르키예 방문 중 이스탄불 군사박물관에서의 교훈은 그곳에서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던 포격 소리만큼 큰 울림으로 남았다.
우리의 정원에 울타리를 허는 작은 여우를 잘 감지하고 분별하여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우선시해야 하리라. 외부의 작은 공격에도 쉽게 노출되지 않도록 우리 내면의 성벽을 강화하고 성전이 정결하게 회복되어야 하리라.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상처나 쓴 뿌리의 상흔을 통해 작은 여우는 언제들이 들어올 수 있다. 그 통로를 통해 울타리를 허물고 포도원을 점령한다. 정원 안에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와 엉겅퀴, 쓴 뿌리를 제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로 그윽한 정원이 되길 갈망한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울타리를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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