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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월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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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실 수필가] 말의 온도

미주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으로 수필에 등단했다.
시인, 수필가,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 수필, 동화, 소설 등을 창작하고 있다.
목회하는 남편과 동역하고 있으며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 거주하고 있다.

언어는 사람의 품격을 알 수 있는 기준 중 하나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품격을 짐작할 수 있다. 전문가에 의하면 사람이 구사하는 언어의 세 마디를 보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아울러, 내 가치를 전달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어느 단체에서 구성원들을 평가하는 항목에 말을 잘 하는 사람과 말을 잘 경청하는 사람에 대해 설문 조사를 했다. 놀랍게도 두 항목에서 1위가 동일 인물이었다. 조사 결과, 말을 잘 하는 화자는 청자의 말을 잘 경청하는 태도를 기본적으로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말은 화자의 전 인격을 담고 있는 영혼의 거울이다. 혹자는 “말은 그 사람을 표현하고 글은 그 사람을 규정한다.”고 했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추적해 보면 내면세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언어는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결합체이다. 내면의 우물에서 길어 올리는 그 사람의 실체이며 자신의 인격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다. 전혀 가공되지 않은 본연의 모습이 언어를 통해 드러난다. 사람이 자주 사용하는 어휘를 보면 그 화자의 심리나 정서적인 상태를 유추할 수 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사고의 집이다.”라고 정의했다.
말의 위력은 놀랍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신음하며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언젠가 의학 다큐멘터리에서 아프리카의 어느 지역에 있는 나무를 연구한 결과를 보았다. 연구 대상이 된 그 나무를 저주하고 홀대했을 때 열매를 맺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그 나무 주위에 있는 다른 나무는 사랑한다는 말과 축복의 말을 했을 때 나뭇잎이 무성하고 과실도 풍성하게 맺었다. 연구 결과를 보고 연구에 참여한 관계자 모두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독설가는 흉기를 들지 않은 살인자와 다름없다. 독설의 씨앗이 떨어진 마음 밭은 사약이 뿌려진 것같이 전인격이 죽어간다. 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이 누군가의 삶을 세울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다.
고대 중동 지역에서 사용했던 사형법 중에 시체와 죄수가 마주 보도록 묶어 두면 시체에서 나는 악취와 병균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사형법이 있었다. 단숨에 죽지 않고 서서히 고통 속에서 죽어가도록 하는 잔인한 사형법이었다. 그 사형법을 이겨낼 사람이 없었다고 하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할 수 있으리라. 로마서 7장 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라는 사도 바울의 처절한 탄식과 절규가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자기 내면에 겉 사람과 속사람의 두 자아가 투쟁하는 극한의 영적, 내적 갈등에서 그런 고백을 했다. 바로 이 사형법을 염두에 두고 고백한 말이라고 한다. 언어폭력은 이 사형법을 방불케 한다. 언어폭력 피해자는 시체와 마주하며 서서히 죽어가는 것과 같다.
언젠가 공영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대법원 앞에서 법조인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했다. 대한민국 법조인들이 1순위로 뽑는 인생 헌법 1조1항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부분 법조인이 공통으로 지목한 헌법 조항이 있었다. 대한민국 헌법 10조에 제시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중략)”는 조항이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모두 소중하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도록 창조되었다. 그런 인간의 존엄성에 치명타를 가하는 독설이야말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흉기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위배되는 행위다. 사람을 심판할 권한은 오직 주권자 되시고 통치자 되시는 살아계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한 분 외에 없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인지하고 말을 해야 하리라. 부지불식간에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말로 상처를 주었다면 먼저 손을 내밀면 어떨까! 상대는 상처가 너무 깊어 스스로 그 약을 바를 힘조차 없을 수도 있을 테니 연고를 직접 발라주는 방법도 있다. 상처를 준 가해자는 기억도 못하는데 그 말을 들은 피해자는 몇 년, 아니 평생동안 고통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말로 인한 상처로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면 용서와 관용의 연고를 바르고 속히 치유되어 새살이 돋아나도록 해야 하리라.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점검하면 몇 도가 될까! 외부에서 침입하는 바이러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사람들의 내면에서 표출되는 언어도 철저하게 온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타인에게 말로 공격하는 것을 쉽게 간과하는 듯하다. 내가 사용하는 말이 모여 나의 언어가 되고 인격과 품격이 되고 삶의 결정체가 된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타인이 나를 결정하고 규정하는 요인이 된다. 내 언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언어인가?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은 최상의 온도를 유지해야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내 모든 말을 듣고 계시고 말하는 의도와 마음속 깊은 곳까지 감찰하신다. 입술의 열매를 거둘 날이 있음을 간과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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