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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4월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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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환 교수] 상농 중농 하농

김종환 교수 달라스 침례대학교 신학대학 부학장 겸 기독교교육학 교수 재임

지난 여름 한국에 갔다가 책을 여러 권 선물받았습니다. 그중에 개살구는 빛을 잃을 때 맛이 난다 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한국 침례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했던 권혁봉 교수가 쓴 책인데 제목이 특이해서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처음 몇 쪽을 읽어보니 저자가 일상에서 겪은 소소한 경험을 관찰하고 숙고하여 얻은 교훈을 모은 수필집이었습니다.

책을 삼분의 일 쯤 읽었을 때 “상농, 중농, 하농(上農, 中農, 下農)”이라는 제목의 글을 만났습니다. 그 글에서 저자는 한국에 이런 속담이 있다고 했습니다. “상농은 땅을 가꾸고, 중농은 곡식을 가꾸고, 하농은 잡초(雜草)를 가꾼다.” 그리고는 각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상농은 아들과 손자도 농사를 지어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농부, 중농은 그해 농사만 잘 지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비료나 제초제를 마구 사용하는 농부, 그리고 하농은 곡식과 잡초를 구별할 줄 몰라서 그저 겉보기에 좋은 것들만 가꾸다 보니 나중에는 잡초만 가꾸게 되는 농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교회에도 상농, 중농, 하농 같은 목회자들이 있다며, 그들의 특성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모든 목회자들이 상농의 목회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토로하며 글을 맺었습니다. 그 내용이 마음에 와닿는 바가 있어서 상농, 중농, 하농 같은 목회자들에 관해 나름대로 생각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상농 같은 목회자는 멀리 내다보며 사람을 키웁니다. 디모데후서 2:2에서 바울이 차세대 사역자인 디모데에게 부탁했던 것을 실천하는 겁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으리라.”

예수님 역시 따르는 무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12제자를 각별히 훈련하여, 그들이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불완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말이 앞서는 사람도 있었고, 행동이 앞서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충동적인 사람도 있었고, 성질이 불 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계산이 빠른 사람도 있었고, 의심이 많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미성숙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범과 교훈으로 양육하셨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증거하는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상농 같은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성장을 돕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게 하고 차세대의 지도자가 되게 합니다.

중농 같은 목회자는 사역을 통해 사람들을 세우기보다는 사람을 통해 사역을 세우려 합니다. 사람을 방법으로 삼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돌려 무리를 크게 만드는데 관심을 갖습니다. 세미나만 다녀오면 새로운 프로그램을 소개합니다. 옛날에 사용했던 프로그램이라도 트렌드에 따라 기발한 이름을 붙여 새로운 것으로 만듭니다.

성경본문을 건전하게 해석하여 적용을 유도하는 설교보다는 흥미롭고 신박한 내용으로 청중의 귀를 즐겁게 하는 설교에 집중합니다. 성경공부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각종 훈련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주력합니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성숙과 성장보다는 이벤트를 강조합니다. 유명인들을 초청하는 이벤트를 빈번하게 만듭니다. 선교와 지역사회 섬김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도회와 예배조차 이벤트로 만듭니다. 광고, 광고지, 게시판 뿐만 아니라 설교까지도 이벤트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교단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 숨기고 큰 교회 목회자들의 외형만을 흉내냅니다. 자신과 교회의 정체성을 희석시켜 모든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애씁니다. 성경적인 것과 비성경적인 것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고 신앙에 관한 모든 의견을 포용합니다. 결국 그 모든 의견을 만족시키기 위해 신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 바르지 못한 가르침까지 수용하고 적용합니다.

하농 같은 목회자는 본연의 사명에서 벗어난 일에 관심을 둡니다. 하나님의 왕국보다 나랏일에 관심을 두어 정치인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합니다. 교회 내의 사랑보다 교회 밖의 존경을 선망하여 교회의 사역보다 지역사회의 일에 더 큰 열심을 냅니다. 크리스천 삶의 변화보다 교인의 수와 빌딩의 크기와 예산의 규모를 중시합니다. 교회를 하나의 사회집단으로 만들어 회중이 교회를 정치집단, 동호회, 또는 사교모임으로 여기도록 만듭니다.

하농 같은 목회자는 현재의 사역에 충실하기 보다는 미래의 사역을 준비하는 일에 매진합니다. 현재의 사역을 이용하여 다음 단계의 사역이나 다음 사역지를 위해 준비합니다. 자신의 경력을 쌓고 이력서를 가꾸기 위해 사역에 임합니다. 회중 가운데서 지도자를 양성하기 보다는 회중으로 하여금 목회자에게 의존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없어지면 회중은 방향감각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흩어지게 됩니다.

신앙의 건전성에 상관 없이 스펙 좋은 사람들을 높이고, 그들을 사람들 앞에 모델로 내세웁니다. 목회자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불순종하는 사람으로 몰아세웁니다.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은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혀 교회를 떠나게 합니다.

개살구는 빛을 잃을 때 맛이 난다 에서 읽은 “상농, 중농, 하농”은 오늘 우리 주변에 있는 목회자들의 모습을 생각해보게 해주었습니다. 과거에 만났던 상농 같은 목회자들, 성경을 바탕으로 사람을 세웠던 목회자들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그런 목회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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