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웨슬리교회 담임
요즘 사람들 사이에 웰빙(well-being)이나 힐링(healing)이라는 말이 많이 쓰입니다. 웰빙라이프, 웰빙음식, 웰빙건강다이어트, 힐링음악, 힐링명상, 힐링여행 등 여러 분야에 웰빙 또는 힐링을 붙여서 씁니다.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웰빙족(well-being族), 중년이 되기 전에 자신만의 위로와 가치를 좇는 30, 40세대라는 뜻의 얼리힐링족(Early Healing族)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습니다. 왜 이렇게 웰빙 또는 힐링이란 말이 유행할까요? 그만큼 세상 살이가 팍팍하고 고단하다는 반증이겠죠. 모든 사람이 살아가기 힘들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만큼 잘 못 살고 있기 때문에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웰빙을 찾고, 몸과 마음에 상처가 많기에 힐링을 원합니다.
우리는 흔히 고난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고난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이 세상에 고난이 없는 삶이 있을까요? 나는 고난이 늘 비켜가는 행운아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어디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라, 사람 몸안에 들어왔을 때 면역력이 떨어져 있어서 그것들을 이겨낼 수 없다면 문제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 고난은 늘 있는 것인데, 고난을 이겨낼 힘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힘이 없으면 고난에 짓눌리고 굴복하게 됩니다.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고난을 당하고 아파할 수밖에 없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난이 면제되는 건 아니지만,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가 있다는 것이 큰 복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위로의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위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리고 이 위로가 고난을 이기는 힘이 됩니다.
고난 중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크신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랑도, 위로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대만의 杏林子(Liu Hsia)는 “사랑은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자 ‘사랑’ 愛를 풀어보면 ‘마음’(心)과 ‘받아들임’(受) 두 글자로 되어있습니다. 사랑은 바로 마음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8) 하나님은 사랑과 위로를 베푸십니다. 하지만 내가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사랑과 위로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오직 나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를 채우고 넘쳐흘러(overflow) 다른 사람을 세울 힘이 됩니다.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고 품을 수 있습니다. 내가 고난당하여 상처 입고 아팠을 때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힘들어 아파하는 다른 사람에게 그 위로를 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나의 고난과 아픔은 누군가를 싸매고 위로하라는 소명(召命)입니다.
코미디언 이동우 씨의 사연을 들으셨습니까? 결혼하고 100일 쯤 지난 신혼 때 눈에 이상을 느껴 안과를 찾았다가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 질환을 판정받고 점차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이동우 씨가 예쁘게 자란 딸의 지금 모습을 단 몇 분만이라도, 한 번만이라도 꼭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그의 사연을 들은 천안에 사는 한 40대 남성이 눈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이동우 씨는 기쁜 마음으로 한 걸음에 달려갔지만 눈을 기증받지 않고 돌아왔답니다. “왜 그냥 돌아오셨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이미 받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저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고 대답했습니다. 눈을 기증하겠다는 그 남자는 ‘근육병’ 환자였습니다. 사지를 못 쓰고 성한 곳은 오직 눈밖에 없는 사람이었지요. 이동우 씨는 말합니다.
“나는 하나를 잃고 나머지 아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그분은 오직 하나 남아 있는 것마저 주려고 합니다. 어떻게 그걸 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후로 이동우 씨는 주저앉아 있던 낙심의 자리를 떨쳐 일어나 복지관을 향합니다. 시각 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점자를 배워 컴퓨터 자판을 치고 글을 씁니다. 그를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강연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닙니다. 하나를 잃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머지 아홉을 감사하며, 잃은 하나로 인해 낙심하고 아파하는 이들을 찾아 위로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웰빙과 힐링의 삶은 어떤 것일까요? 위로 받고 위로 하며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위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또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를 통해 누군가에게 흘러가는 통로가 기도입니다.
고국을 떠나 이민생활하는 우리들이 모두 겪는 일입니다. 오랜 만에 한국에 가서 부모님을 뵈면 그동안 흘러간 시간이 이토록 길었을까 싶게 늙고 병든 모습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언젠가 교인 중에 한 분이 급히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엔 어쩐 일로 다녀오세요?” 물었더니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셔드리고 와야 한답니다. 자식 얼굴도 기억 못하시는 아버지의 손을 놓고 다시 돌아서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구하여 기도했습니다. 목회자가 전하는 어떤 말로도 헤아리고 만져줄 수 없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위로의 하나님’(고후1:3)이 고난 당하는 이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위로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환난 중에 있는 자신을 위해서 간구함으로 도우라(고후1:11)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여 돕고 싶습니까? 그를 위해서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