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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5월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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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권 목사] 브엘쉐바에서 (2)

김세권 목사
조이풀 한인교회 담임

최소한의 삶의 여건은 과연 재앙일까, 아니면 축복일까? 최소한의 생존만을 담보하는 강수량은 의미가 있다. 브멜쉐바의 연간 강수량은 200 mm 남짓이다. 이 수치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로 (하긴 다른 방법도 없겠지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임계점이다. 이보다 비가 적게 오면, 그곳에 아무 것도 심거나 거두지 못한다. 양을 치며 뭔가 조금 심기도 했을 아브라함은 그야말로 생존이 간당간당한 곳에서 살았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에게, “네가 내 말을 들으면 복을 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기복신앙과 상관이 없다. 이건 조금 더 가지겠다며 하나님을 향해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에게, 절대적인 생존을 위해서 그분이 하신 말씀이다. 이런 한심한 곳에서 “네가 내 말을 청종하면 나는 네게 생명을 선물할 것”이라는 말씀이 주어졌다면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일부러 아브라함을 이쪽으로 끌고 오신 의도가 눈에 잡힌다.

아브라함은 거기서 헤브론을 왔다 갔다 했을 것이다. 아마 건기에는 헤브론에서 사람들과 어울렸을 것이고, 우기에는 이곳에 왔을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10월에 이른 비가 내리고, 겨울비가 12월에서 2월까지 온다. 이때가 우기이다. 비오는 철이면, 아마도 아브라함은 브엘쉐바로 양을 몰고 내려왔을 것이다. 네게브에서 천막을 치고 양떼를 돌보면서 아브라함은 매일 하나님을 찾았겠다. 그분이 돌보시지 않으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로 조악한 곳으로 사람을 부르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위에 올라서니, 정상에는 텔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대를 세워놨다. 생긴 게 그저 그랬지만 무슨 상관이랴. 위에는 옛날 건물을 상상하면서 그려놓은 성 조감도가 있었다. 조망대 밑으로는 지하수조로 내려가는 굴이 있었다. 이곳이 건조한 지역이다 보니, 우기에 내리는 비를 보관하는 건 생존에 절대적이었겠다.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수조로 사용한 방이 여러 개 있었다. 바깥에서 비가오면 물이 유입되도록 하는 수로도 만들어 놓았다. 옛날 사람들이라고 해서 우습게 볼 건 아니다. 삼천년 전에 여기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이러니, 말할 게 없다.

텔 너머로 네게브 사막이 보이고, 신도시도 보였다. 텔 주변에는 무슨 시내의 흔적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이른바 건천(히. 나할 / wadi)이다. 꼭대기에서 바람을 이마에 맞으며, 정박사님이 시편 126:1-6 이야기를 꺼낸다: “하나님께서 포로들을 남방의 시냇물처럼 돌리신다.” 네게브(남방)에 비가오면 건천에 물이 갑자기 넘쳐 흐른다. 이 지역의 흙은 로에스(Loess) 황토인데, 물에 스며들어서 가라앉지 않고 물과 함께 씻겨간다. 비가 왕창 와서 와디를 채우고, 황토빛 물이 확 쓸려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시편기자가 노래했다는 거다. “우기에 넘쳐 흐르는 건천처럼 하나님께서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신다”니, 살아있는 생생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빗물이 땅에 스며들지 못하고 급격히 급류를 이뤄 쓸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인이 포로를 돌려보내 달라는 염원을 거기에 담았다고 생각하니, 성경이 살아서 심장을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텔 입구에는 지금은 무너졌지만 성문과 성벽, 그리고 성벽을 따라서 건물이 있던 흔적이 약여했다. 성벽에 붙은 건물에 긴 의자가 벽쪽으로 붙은 것을 보니, 창세기에 나오는 롯 생각이 났다. 고대 가나안의 성문은 말하자면 중요한 회합장소가 아니었던가. 이곳이 그런 곳인진 물론 알 수 없다. 생각이 났단 거 뿐이다. 성문 안쪽에는 작은 광장이 있다.

이쯤해서 텔 탐사(?)를 마치고, 점심 먹으러 신도시 네게브를 향해서 출발했다. 배도 고프고 좀 지치기도 했다. 네게브 신도시는 쾌활했고, 복잡했으며, 좁았다. 차를 간신히 세우고 식당에 들어갔다. 빵이 맛나다 해서 먼저 한 덩어리를 시켰다. 이어서 나는 연어요리를 주문했고, 정박사님은 이탈리아식 작은 납작만두를 달라 했는데, 양이 많아서 다 먹질 못하고 결국 음식을 남겨야 했다. 점심을 나눈 후에, 아브라함의 또 다른 거주지 헤브론을 향하여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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