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프교회 담임
어떤 외딴 마을에 술집이 하나 생겼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조용하던 마을이 밤늦도록 떠들어대는 술꾼들로 인해 시끄럽게 되었습니다. 특히 교회의 경우에는 주일에 큰 지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교인들은 하나님께 그 술집을 불태워 버리시든지, 아니면 어떻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요일 저녁에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는데, 교인들이 한참 기도하는 중에 마침 그 술집에 벼락이 떨어져 순식간에 술집이 다 타버렸다고 합니다. 술집 주인은 동네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술집을 불태워 달라는 기도를 해서 자신의 재산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교인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주장하며 변호사를 고용해 맞소송을 했다고 합니다. 얼마 동안의 심의 끝에 재판관은 아주 도적적인 결론을 내렸는데, 바로 술집 주인의 소송을 기각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술집 주인은 슬퍼했고, 교인들은 기뻐했다고 합니다.
만약에 이와 비슷한 일들이 우리의 삶에 일어난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모습을 가지실 것 같은 가요?
사실 이 재판의 결과와 그에 대한 술집 주인과 교인들의 반응을 보면, 상당히 아이러니한 두 가지의 모습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술집 주인은 기도의 능력을 확실히 믿고 있었지만 소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았다는 아이러니한 모습입니다. 두 번째는 술집 주인은 기도의 능력이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 받지 못해서 슬퍼했고, 교인들은 기도의 능력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거짓이라는 재판의 결과에 기뻐했다는 아이러니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어쩌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이방인 백부장의 이야기에서도 동일한 아이러니한 모습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열 두 사도들을 선택하신 후에 행하신 사역의 대상이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인 백부장이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당시 시대의 상황과 어긋나는 사람들의 관계입니다. 먼저 유대의 장로들과 백부장과의 관계입니다. 유대의 장로들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는 자들로, 유대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며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는 피지배층이었습니다. 하지만 백부장은 로마의 황제를 신으로 믿고 섬기는 자로, 로마 군대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자이며 유대를 식민 통치하는 지배층이었습니다. 즉, 이 둘의 관계는 원수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의 장로들이 백부장의 부탁을 받고 예수님께 백부장의 종의 병을 고쳐 달라는 간절하게 부탁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백부장과 종의 관계입니다. 당시에는 신분이 높은 자가 신분이 낮은 자를 돌보는 일을 권장하지도 칭찬하지도 않았습니다. 더욱이 중풍병에 걸려 아무런 쓸모가 없는 종은 돌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백부장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자신의 병든 종의 병을 고쳐 주기 위해 장로들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세 번째 아이러니한 모습은 예수님께서 믿음에 대해 칭찬하신 자가 유대의 장로들이 아니라 백부장이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의 장로들은 예수님을 그저 특별한 능력을 가진 랍비로 여겼지만, 백부장은 예수님을 인격이 없는 질병조차도 주관하시는 권위를 가지신 신적인 존재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백부장은 자신이 잘 아는 군인들의 상명하복의 명령체계를 인용하여, 자신이 부하나 종에게 명령할 때 그들이 순종하고 행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병이 고쳐질 것이라 고백했던 것입니다.
19세기의 부흥사요 영국 침례교 설교자인 찰스 스펄전 목사님께서는 믿음에는 세 가지 요소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라틴어로 ‘지식(정보)’를 의미하는 ‘노티티아(notitia)’라는 요소와 ‘동의’를 의미하는 ‘아센수스(accensus)’라는 요소, 그리고 ‘신뢰의 행함’을 의미하는 ‘피두시아(fiducia)’라는 요소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들이 있을 때 진정한 믿음이 실행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이방인 백부장도 예수님께서 병든 자들을 고쳐 주신다는 소식을 들은 ‘믿음의 지식(정보)’이 있었고, 예수님만 만나면 자신의 종이 치유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의 동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만 만나면 자신의 종이 낫는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겠다’고 행하는 ‘믿음의 신뢰와 행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백부장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7:9에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가 가진 믿음의 모습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서, 예수님께서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온전한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나에게는 믿음의 지식이 있는지? 나에게는 믿음의 동의가 있는지? 나에게는 믿음의 신뢰와 행함이 있는지?’에 대해서 날마다 점검하고, 이러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도록 날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행하기에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 질 때, 우리가 가진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 작아도 우리의 삶에서 믿음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