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뒤처진다는 것은 유쾌하지 않는 경험이다. 모두가 일등과 최고가 되기 위해서 정신 없이 달리고 있는 세상에서 누가 뒤처지려고 하겠는가?
세상은 우리에게 더 빨리 달리라고 부추기고, 남들 보다 앞서라고 부담감을 준다. 빨리 달린 자들에게 주어지는 눈에 보이는 칭찬과 보상은 뒤처진 사람들에게 더 깊은 상처와 패배감을 각인시킨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비교당했고, 일등이 되도록 강요받아 왔다. 일등, 백점으로 등급을 매기면서 더 빨리 달려야 살아 남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양 세뇌되어 왔다. 이런 미친 경주에 어린이나 어른이 예외가 없다.
그런데 우리가 직면해야할 진실이 있다. 모두가 일등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먼저 가면 누군가 뒤처져야 한다. 내가 일등되는 기쁨을 누릴 때 다른 사람은 좌절을 아픔을 맛보아야 한다. 그런데 세상은 수많은 2등과 3등의 아픔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일등의 영광에만 스포트 라이트를 비춰준다. 이런 경주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피해자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인생이라는 경주는 일등만 승리의 관을 쓰고 환호를 받는 경기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승리자가 될 수 있는 환상적인 인생의 레이스이다. 하나님은 일등에게만,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달린 사람들에게만 상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자기의 인생을 자기 속도로 달린 모든 사람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가장 인생을 행복하고 가치 있게 사는 사람은 자기의 페이스대로 달리는 사람들이다.
달팽이의 속도가 있고, 거북이의 속도가 있고, 토끼의 속도가 있고, 독수리의 속도가 있다. 단거리 경주자와 마라톤 경주자가 달리는 속도가 다르다.
자기 페이스대로 달려야 그 경주를 완주할 수 있고, 그 달리는 과정이 의미가 있고 기쁨이 있다.
반칠환씨가 쓴 <새해 첫 기적>이라는 시에 보면 자기 속도를 달리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잘 보여준다.
<새해 첫 기적>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채로 도착해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바위마저도 앉은채로 결승점에 도착하는 것이 자기 속도이다. 우리의 인생의 각자의 속도로만 달리면 의미가 있다. 그런데 각자의 속도를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존재들이 항상 나타난다. 나보다 빨리 달리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볼 때 상대적으로 뒤처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뒤처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페이스 대로 달리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페이스대로 달리는 것이다.
아이러니는 가장 빨리 먼저 달리고, 가장 빨리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뒤처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만족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기의 영역에서 범위를 조금만 넓히면 언제나 나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우리 평생 그들을 쫓아가다보면 정작 의미 있는 일은 하지 못하고 허공을 치듯 달리기만 하다가 끝날 것이다. 성경의 인물들 중에 하나님께 사용된 사람들은 모두 뒤처진 자들이었다. 아브라함은 75세의 늦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야곱은 에서보다 늦게 태어났다. 다윗은 형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막내였다. 요셉은 형들의 손에 이집트로 팔려갔다. 반칙의 피해자가 되어서 레이스에게 낙오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을 사용하셨고, 빨리 달린 사람들이 이루지 못한 값지고 위대한 일을 이루게 하셨다.
게을러서 뒤처지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하나님과 함께 걷기 때문에, 자기의 페이스대로 가기 때문에 뒤처지는 것은 오히려 은혜이고 복이다. 이것이 뒤처짐의 은혜이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은 느려 보인다. 사람들의 눈에는 뒤처져 보인다. 그런데 그 길이 가장 여유 있는 길이고, 가장 확신에 찬 길이고, 하나님이 지키시는 길이다. 하나님과 함께 자기의 길을 자기 속도로 걸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