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 고대로부터 다양한 인간론이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질문은 더욱 절실하다. 히브리대학교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1976,2,24~)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21세기 말은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사이보그’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이 기계와 구별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지켜야 한다고 경고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한 걱정과 함께 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재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교회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가? 그렇다. 인간 존재의 위기 앞에 우리는 신학적 인간학에 대하여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학은 본질적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관한 연구이고, 하나님의 진리는 세상의 진리이며, 인간과 인간이 처한 운명에 관한 것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뻘콥은 “신학 곧 하나님에 관한 연구는 필연적으로 인간학 곧 인간에 관한 연구로 나아간다”고 말했던 것이다(뻘콥, 『조직신학』 상, 392). 하나님이 인간의 유일한 소망이라면, 신학이야 말로 오늘날 인간 존재의 위기에 가장 희망적인 인간론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창조되었다(창1&2). 많은 사람들이 우주와 모든 자연 세계가 우연히 생겼다고 믿지 않는다. 신에 의한 창조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몇가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인간은 한 순간도 스스로,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다(창2:7).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마치 무에서 유가 창조되듯이 그 생명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아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태생적으로, 운명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되거나,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도 그를 힘입어 살며 존재하고 기동한다(행17:28). 시편기자(144편)는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입니까?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다니요, 인생이 무엇이길래, 저를 생각하시나이까?!”하고 감탄한다. 히브리어로 ‘알다’(야다아)는 남녀 간에 한 이불을 덮는 관계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알아 주신다는 말은 친밀하게 대하시고 그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신다는 말이다. ‘생각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도 고민하고, 궁리하고 근심함을 암시한다.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데(시144:4) 하나님께서는 이 초라한 인생들로 인하여 즐거워하시고, 고민하시고, 궁리하시고 근심하신다. 사람은 하나님의 품 안에서 산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존재의 목적이 있다. 인간이 창조되었고, 그 존재가 신의 품안에 있다면, 신과 분리된 인간의 존재 의의와 목적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그 존재의 목적을 신 앞에서 묻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는 존재로 목적되었고(엡1:6),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소요리문답 1문) 인간 존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다.
인간은 궁극적인 가치의 담지자도 결정자도 아니다. 인간에게 모든 가치와 절대적 의미의 근원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선악 간에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전12:14).
인간들의 형제애와 동포애는 보편적 공리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장로교회 십이신조 다섯 번째 조항은 “하나님이 사람을 남녀로 지으시되 자기의 형상대로 지식과 의와 거룩함으로 지으사 생물을 주관하게 하셨으니 세상 모든 사람이 한 근원에서 나왔으므로 다 동포요 형제”라고 선언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형제이다. 구원론적 차원 뿐만 아니라, 창조론적 차원에서 모든 인류는 형제이다.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라도 하나님의 애정과 사랑의 피조물로서 서로를 대우해야 한다(갈6:10).
우리는 또한 모든 피조물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은 일종의 친족관계에 있다. 일찌기 아타나시우스가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물질을 신격화하기 위함이라고 말한 것처럼(On the Incarnation of the Word), 인간의 구원은 자연 만물을 신성에 참여하게 하시는 우주적 경륜 안에 포함된다(롬8). 그래서, 오늘날 기후문제와 생태위기는 곧 인간존재의 위기이다.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자연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다. 서로의 돌봄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것을 예정하셨다(엡1:9-10).
인간이란 무엇인가? 기후변화와 함께 절체절명의 생태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고도화된 문명의 이기는 급속하게 인간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존재의 위기속에 기독교의 신학적 인간론이 대안인 것은 이것이 이론을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나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한다(고후5:17). 그것은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실현된 사건이다. 기독교 신학적 인간론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품에서 모든 이웃과 세상이 가족이 되는 것을 지향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 만물도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안으로 들어온다. 세상이 탄식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고대하고 있다(롬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