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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1월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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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환 교수] 세상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

김종환 (J. Jonathan Kim) 교수 DBU 기독교교육학 교수

씨애틀에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딸이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파트타임으로 공부를 하더니 드디어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지난 달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다녀왔습니다.

마침 딸의 집 가까이에서 화이트 센터 프라이드(White Center Pride)라는 LGBTQ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LGBTQ 축제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기에 행사장을 방문했습니다. 낮설고 난해한 복장과 치장을 하고 남자끼리 여자끼리 걷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곧 몰려들 사람들을 위해 도로를 막고 대형 트럭 위에 무대를 설치하고 작은 상점들을 펼치는 사람들이 분주해 보였습니다. 오후가 되니 LGBTQ 밴드가 악기를 연주하며 가두행진을 벌였습니다.

“모든 것이 신기하게 보였지만 가장 신기하게 보였던 것은 그 행사를 신기하게 보는 사람이 없어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LGBTQ 행사에 다들 익숙해 보였습니다. 인간 문화의 끄트머리 같은 모습을 다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세뇌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LGBTQ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어린아이들을 세뇌하고 있습니다. 디즈니(Disney)는 어린이용 LGBTQ 옷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CNN은 어린이들을 위한 LGBTQ 여름 독서가이드를 선전하고 있습니다. 6월 5일 콜로라도의 초등학교 4곳은 프라이드 먼쓰(Pride Month) 축제를 열고, 드래그 퀸(여장을 한 남자)이 이야기책을 읽어주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성경적인 도덕을 거부하는 것이고, 그 거부의 뿌리는 성경의 진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6월 17일 갤럽(Gallup)은 미국의 성인들 중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81%라고 발표했습니다. 그것은 2017년에 비해 6% 감소한 수치이고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른 추이를 볼 때 최저치입니다. 낙태는 30년간 감소하다가 다시 증가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에 대한 공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 예로, 뉴욕의 유대교 학교는 종교적인 이유로 LGBTQ 학생동아리를 인정하지 않다가 주정부로부터 문을 닫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외에도 성경의 진리를 부인한 결과를 사방에서 빈번하게 봅니다. 6월 19일 워싱턴 DC의 음악축제에서 총격사건의 벌어져 15살 난 소년이 죽었습니다. 6월 18일 이디오피아에서 인종적인 공격으로 인해 200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FBI는 친생명 임신센터와 교회들에 대한 일련의 공격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너무 망가진 것 같습니다.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6월 19일 준틴쓰(Juneteenth) 의미를 생각해보면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6월의 준(June)과 19일의 나인틴쓰(nineteenth)를 조합한 준틴쓰는 오래되고도 새로운 공휴일입니다. 1865년 6월 19일 연합군이 텍사스 갈베스톤에 도달하여 남북전쟁은 끝났고 노예제도는 폐지됐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하여 Juneteenth Freedom Day(준틴쓰 자유의 날)가 생겨났습니다. 1979년 텍사스가 처음으로 이 날을 공식적인 공휴일로 채택했고, 2021년 6월 바이든 대통령이 국가 공휴일로 제정했습니다.

베리(Rasool Berry) 목사는 6월 16일자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에서 준틴쓰의 중요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자유를 기념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노예제도라는 악한 제도가 종식은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입니다. 준틴쓰 같은 축제에는 갱신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상기시켜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베리 목사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고 한 바울의 권고를 언급하고, “준틴쓰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실천할 수 있는 국가적인 기회를 제공한다”고 피력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창 1:27). 모든 사람을 세상에 유일한 사람처럼 사랑하십니다(어거스틴). 노예제도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시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1963년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을 사용하셔서 노예들을 해방시키셨습니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같은 크리스천들을 사용하셔서 인권을 위해 싸우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들을 사용하여 타락한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십니다. 세상을 포기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결국 크리스천이 세상을 등지면, 비관주의자들의 예언이 성취되고 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고자 하는 의지만 가지고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바울은 메시야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인해 매우 안타까워하면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했습니다(롬 9:3).

바울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사역의 대상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마 14:14),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떠난 목자(눅 15:3-7), 모두로부터 미움을 받는 세리의 이름을 부르시고 그의 집에 머무셨던 구세주(눅 19:1-10)로부터 왔습니다. 그렇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곧 사랑이고, 사랑은 성령이 충만하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엡 5:18)이 맺는 성령의 열매(갈 5:22)입니다.

성경의 진리를 부인한 결과, LGBTQ가 확산하는 것을 보고, 낙태가 증가하는 것을 보고, 총격사건이 빈발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종교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 심해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크리스천들은 낙망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하고 세상 사람들을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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