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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2월 1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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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실 사모] 마음이 머무는 집

미주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으로 수필에 등단했다. 시인, 수필가,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 수필, 동화, 소설 등을 창작하고 있다. 목회하는 남편과 동역하고 있으며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 거주하고 있다.

필자는 종종 동네를 산책하며 집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집 앞을 지날 때 그 집안에 누가 살고 있는지, 어떤 가족 구성원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과 집안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때가 있다. 집안을 볼 수는 없지만, 집의 외관은 집주인의 성향을 느낄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다. 집마다 그 집에서 느껴지는 고유의 향기가 있다.

집이란 어떤 의미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편안하고 포근한 엄마 품이 연상된다. 저녁이 되었는데 돌아갈 곳이 없다면 어떨까. 집은 하루 일상을 마치고 본능적으로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다. 외출 후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게 감사한 일이다. 인간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동행하는 가장 밀접한 삶의 기본적인 수단이다. 삶과 집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런 집을 가꾸는 것은 집주인과 그 집에 거주하는 자들의 몫이다. 인테리어의 기본은 잘 버리고 정리를 잘하는 것이다. 정돈되지 않은 마음과 불안정한 심리는 그 사람의 방과 집을 보면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우리가 거주하는 집도 그러한데 하물며 마음의 집은 어떨까. 집이란 궁극적으로 우리가 언젠가 가야 할 본향이다.

얼마 전에 새집으로 이사한 집사님 집에 초대받아 갔다. 뒷마당 정원에 앉아 담소를 나누다 필자의 시선이 흘러간 곳이 있었다. 감나무 나뭇가지에 앉아 한가롭게 휴식하고 있는 벌새였다. 1초에 평균 80회 정도 날갯짓하는 벌새가 주변을 응시하며 휴식하고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는 벌새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벌새가 날아와 쉼을 누리는 집이었다. 벌새가 생명이 머무는 처소를 알아본 게다.

집사님 집의 뒷마당 정원과 텃밭은 마치 누군가를 위한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 놓은 듯했다. 그곳에 앉아 있는 것으로 이미 힐링이 되었다. 바람이 주인 허락 없이 정원에 들어와 주인 머리카락을 만지고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었다. 벌새와 새들의 안식처가 되는 집에 잠시 머무는 동안 마음이 평화로웠다. 그곳에서 느끼는 바람 한 점과 햇살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뒷마당은 대부분 타인이 잘 왕래하지 않는 장소다. 주변의 다른 집들은 앞마당 정원이 잘 정돈된 것에 비해 뒷마당은 정돈이 되어 있지 않았다. 집사님 집은 앞마당과 뒷마당 정원이 단아하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게다가 뒷마당에는 손님들이 언제든지 머물고 갈 수 있는 휴식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집주인은 뒷마당 정원에 텃밭을 일구어 그곳에 여러 종류의 채소와 식물을 심었다. 매일 물을 주고 텃밭을 가꾸는 재미에 빠져있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뒷마당 텃밭에서 채취한 상추와 케일, 깻잎을 먹는 맛이 남달랐다. 햇빛과 물, 주인의 정성으로 자란 채소들이 먹거리가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뒷마당으로 나왔는데 집사님 내외의 손주가 외출했다 돌아왔다. 손주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눈길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눈빛이었다. 손주를 무릎에 앉히고 서로 눈을 맞추며 해맑게 웃는 모습보다 평화로운 풍경이 또 있을까.

생명을 품은 것들이 수런거리는 봄이다. 겨우내 잠들었던 아름드리 우듬지마다 새싹들이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켠다. 아집과 편견의 잡초들로 무성한 정원을 정돈한다. 황폐한 정원을 기경하고 온유와 관용의 꽃을 심는다. 봄 햇살이 커튼 사이로 자늑자늑하게 내려앉는다.

봄바람이 꽃향기를 데리고 왔다. 정원 담에 몸을 기댄 채 봉오리를 머금고 있는 꽃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뒷마당 텃밭에 시선을 돌렸다. 상추, 깻잎, 미나리, 호박, 오이, 케일, 부추, 대파, 방울토마토, 감나무, 레몬 나무, 라일락 등 필요한 채소와 유실수가 한 텃밭에서 햇살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아그데아그데 열린 방울토마토는 이제 곧 빨간 등불을 켜고 뒷마당 정원을 더 밝게 밝혀줄 테다. 레몬은 노란 등불을 켜고 방울토마토 옆에서 빛을 더해주리라. 감나무 밑에서 그늘에 가려져 잘 자라지 못하는 호박 모종이 마음 쓰인다며 자리를 옮겨 줘야겠다는 주인의 얼굴에 햇살이 한가득 내려앉았다.

이민규 심리학 교수의 저서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라는 책에서 저자는 그 1%가 바로 인격의 향기, 내면의 향기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고유의 향기가 있다. 그것은 생명력 있게 흘러가는 묘한 위력이 있다. 필자가 집사님 집에서 마주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사람과 풍경이 조화를 이뤄 그 공간에 마음이 머문 게 아니었을까.

외관이 좋은 집이라도 주님께서 내주하시지 않는 집이라면 어떨까. 집사님 집에서 느낀 평화로움과 안식은 집사님 가정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우리 각자의 성전이 하나님의 마음과 눈이 영원히 머무시는 처소가 되기를 갈망한다. 우리가 거주하는 집은 어떤 집인지 돌아볼 일이다. 무너진 내면의 성벽을 견고하게 보수하고 울타리를 허무는 작은 여우를 잘 분별하여 건강하게 세우길 소망한다. 내 집은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집인가, 사람만 머무는 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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