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를 소개한다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나님 안에서 정체성을 정립하지 않으면 세상 가치 기준으로 설정된 자신의 모습을 참 자아로 인식할 수 있다.
자기소개는 자신의 정체성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소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자기가 쌓아 온 경력이나 이력 등 외적인 항목 위주로 자신을 소개한다. 물론 이력이나 경력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흔적이기에 그 사람의 성실성과 태도를 가늠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을 채용할 기준을 객관적 근거만으로 판단한다면 중요한 것을 간과할 가능성이 있다. 서면에 기록하지 않은 이면에 존재하는 더 중요한 사항을 보지 못할 수 있다.
언젠가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강사의 자기소개가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사회자가 강사를 소개하고 강사가 청중 앞에서 본인을 소개했다. 필자가 알기에도 강사의 이력이나 경력은 소위 세상 기준으로 화려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색하게 된 강사의 한마디 말에 참석자들 모두 숙연해지는 시간이었다.“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청지기일 뿐입니다.” 거기에 한 마디 덧붙였다. 나중에 자신의 묘지에 “하나님을 사랑하다 잠들다.”라는 묘지명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강사의 자기소개가 필자에게 특별한 울림으로 남았다.
세상에서 요구하는 이력서 제출을 위한 자기소개서가 아닌 하나님께 나를 소개할 수 있는 자기소개서를 한 번 작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은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께 나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신중하게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이 묻어있다. 화려한 약력이 있음에도 간단하게 축약해서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세밀하게 작성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살아온 지난 여정에 대한 회한과 눈물의 흔적이 오롯이 담긴 순간들을 어찌 간과할 수 있을까. 문장마다 정성을 담아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마음을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조들은 어떤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믿음의 반열에 오른 인물들이다. 구약의 인물 중 대표적인 예로 아브라함을 들 수 있다. 그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땅”을 향해 나아갔다. 그를 일컬어 ‘믿음의 조상’이라 한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였으나 미디안 광야에서 훈련받고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는데 지도자로 쓰임 받았다. 그를 ‘온유의 대명사’로 부른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총 850명과 대결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불이 내려오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참 하나님임을 입증했다. 그를 ‘불의 사자’, ‘하나님의 사자’라 부른다.
신약 인물에서 사도 바울은 어떤가. 사도행전 9장 15절에 “이는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사울(바울)에 대해 하신 말씀이다. 바울은 시리아의 수도 다메섹(다마스쿠스)에서 주님을 만나 삶이 완전히 변화된 사람이다. 옛사람에서 새사람, 겉 사람에서 속사람, 영의 사람에서 육의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의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는 ‘복음 전도자’, ‘이방인의 사도’다. 그의 신분이나 학식, 사회적 위치, 그가 속한 지파 등은 어떤가.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화려한 약력이 있음에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다.
믿음의 선진들의 공통점은 광야 훈련학교를 통과한 사람들이다. 그 앞에 어떠한 화려한 수식어가 붙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친히 수식어를 붙여주신 인물들도 있고 후대에 붙여진 인물들도 있다. 이들 이름 앞에 많은 말을 붙이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 자녀들의 공통 분모는 하나님께서 총장이신 광야 훈련학교 재학생들이다.
한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잠잠히 점검하면 어떨까. 세상에서 붙여준 어떤 화려한 이력이나 약력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보면 어떨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두 팔 벌려“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나의 아들과 딸아!” 인정하시며 기쁨으로 맞아주시는 삶이 되길 소망한다.
사람이나 세상의 가치 기준이 아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이 가장 복된 삶이다. 자기 이름 앞에 붙일 수식어로“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이 말이면 족하지 않을까.
새해에도 모든 상황과 환경을 능히 압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손길이 삶의 모든 영역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시길 갈망한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서 정결한 신부의 영성으로 넉넉히 승리하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