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년대 한국 교회는 청년들에게 큰 매력이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청년들의 영적 필요를 제대로 채워주지 못한 거지요. 이때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세대 간의 소통이 꽉 막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청년들의 꽉 막혀 있는 영적 숨통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닌, 대학생 선교 단체였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의 대학 캠퍼스에는 정말 셀 수 없을 정도의 학생 선교 단체들이 대학생들에게 영적인 활력을 제공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 지 모르지만, 그 시점에 신생 대학교도 우후죽순처럼 나타났으니, 학생 선교 단체에게는 대학 캠퍼스가 말 그대로 그린 오션이었습니다. 이렇게 학생 선교 단체가 급팽창하게 되자, 교회들도 그동안의 전통적인 입장을 벗어나서 젊은이들과 소통하려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지요. 학생 선교 단체들의 방식을 도입해서 활발한 학생 신앙 운동을 주도하는 교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구요. 이렇게 학생 선교 단체의 주도로 한국의 청년들의 영적 필요가 충족되면서 교회나 선교 단체의 양적 팽창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양적 팽창의 맛을 누리던 교회나 선교 단체에 점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회나 선교 단체의 양적 팽창의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교회나 선교 단체를 떠나는 청년들의 수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나는 왜 청년들이 이렇게 교회나 선교 단체를 외면하게 되었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를 한국이 아닌 선교지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2000년대와 2010년대를 미국 이민교회 목회를 했기 때문에 한국 교회의 상세한 사정을 파악하는 게 쉽지 않더군요. 하지만, 선교사로서 교회를 방문하면서, 그리고 이민 목회 현장에서 만나는 최근의 이민자들을 만나면서, 한국 교회의 현실을 살피게 되었지요. 게다가 한국 교회에 대한 진단을 한 여러 문서들을 접하면서, 어느 정도 짐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80년대 초에 선교훈련을 받으면서 많이 들었던 것이 WCC의 ‘다원주의’였습니다. 구원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논조였습니다. 이러한 신학적 차이 때문에 우리는 WCC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지요. 그리고 이 단체가 주창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보수 신학 편에 있던 우리는 ‘교회의 선교’를 주장했구요. 해외 선교가 교회의 사명이라는 거지요. 이렇게 우리는 선교지에 있으면서 ‘교회의 선교’를 바탕으로 선교 사역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WCC에서 제시한 ‘하나님의 선교’가 재조명되기 시작하더군요. 레슬리 뉴비긴이라는 영국 출신 인도 선교사가 수십 년 사역 후 고국 영국에 돌아와 보니, 교회가 사라져 버리는 충격적인 현상을 목격한 겁니다. 선교지인 인도에는 새로운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반해, 막상 선교 주도국이었던 영국의 교회는 그 역동성을 상실하고 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컬했겠습니까!
그래서 뉴비긴이 제창한 것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선교’였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선교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거지요. 선교가 교회의 사역의 일부가 아니라, 교회 자체가 선교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은 ‘선교 공동체’라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해외 선교 사역만 아니라, 국내 지역 선교 사역도 모두 교회 존재의 목적이라는 겁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의 현장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살아야 하는 선교지가 된다는 겁니다. 우리의 가정, 일터,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사는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요구하신다는 거지요. 이것을 ‘선교적 삶’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이 인간의 죄로 인해 피해를 입었지만, 하나님은 타격을 입은 이 세상을 다시 온전케 만들기 위해,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겁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를 보수 신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게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80년대에는 그렇게 거부반응을 했던 선교의 개념을 이제는 새롭게 해석을 해서 선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리게 되었으니까요.
이런 입장은 기존의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입장과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천국 가는 것에 집중을 하는 나머지, 이 세상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에는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게 그동안 보수 교회의 입장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에 이 땅에 미련을 두지 않고, 죽어서 가는 천국에 우리의 마음을 두게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된 거지요. 천국에 상급을 많이 쌓기 위해서,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 할 것은 바로 교회 봉사와 헌금, 전도, 선교라고 믿고, 그 일에 힘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와 서신서에서 말하는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장소가 아니라, 이 땅에 온 천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하나님) 나라가 (이 땅예) 임하게 하옵시고,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게 하옵소서” 라고 되어 있지요. 예수님이 선포하신 천국은 이 땅에 존재하는 천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