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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4월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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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렬 목사] 구운 생선의 향기

달라스 드림교회 기영렬 목사

어둠이 가장 짙을 때, 새벽이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풍파 속에서 사람들은 종종 의심이라는 파도에 휩쓸립니다. 거친 바다 위에서 흔들리는 작은 배처럼, 강철같던 믿음도 시련 앞에서 속수무책일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 블로그에서 읽은 어떤 목사님의 글이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알았던 고향 후배가 찾아와서 다짜고짜 교회를 다니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이렇게 말합니다. “몇 주 전부터 눈병으로 고통을 받아 일주일간 간절히 새벽기도도 하고 한 끼씩 금식도 했는데, 오히려 눈이 더 안 좋아졌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의미심장한 대답을 건넸습니다. “그래 잘됐다. 그럼 교회 다니지 말아라.” 당황한 후배에게 목사님은 의처증 환자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의처증 환자와의 결혼은 신혼이 아닌 감옥이 된다. 회사에 나간 남편이 5분마다 전화해서 부인이 집에 있는지 확인하고, 길가다 동네 아저씨에게 인사라도 하면 ‘저 남자 몇 번 만났냐’고 따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아라. 그런 남편과 살 수 없지 않겠냐? 신앙생활은 예수님과 결혼한 것이다. 한번 결혼했다면, 더 이상 배우자를 의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주님이 살아계신 것에 대해 더 이상 의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
“우리가 주님을 믿는 가장 큰 이유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한 천국의 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이 아니냐? 이 엄청난 선물 앞에서, 일시적인 육체의 고통이나 응답되지 않은 기도가 뭐 그리 대단하냐?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눈이 좀 아프면 어떠며, 기도의 응답이 없으면 어떠냐?”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은 후배는 깊은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SNS에 이런 고백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는 태양이 빛나지 않을 때에도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나는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사랑이 있음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이 침묵을 지키실 때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
하지만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여러 번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언을 들었음에도 믿지 못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셨다는 말을 했음에도 믿지 않았고,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났다고 해도 믿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의심했습니다. 의심이란 본능적이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야고보서 1장 6절은 기도에 관해 말하면서 의심에 대해 이렇게 경고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의심은 우리의 영혼을 흔드는 위험한 적입니다. 의심의 씨앗이 자라면, 우리의 믿음은 뿌리째 흔들리게 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역설적이게도, 넘어지는 쪽으로 몸을 기울여야 자전거가 균형을 잡고 나아갑니다. 처음에는 이 원리가 이해되지 않아 많은 아이들이 넘어집니다. 그러나 이 역설을 받아들이고 실천할 때, 비로소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신앙의 여정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때,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믿음으로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었으나, 강한 바람을 보고 두려워하는 순간 의심이 찾아왔고, 그는 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는 의심하는 제자들의 의심을 제거해주시고 대신 확신으로 바꿔주시는 예수님의 인자한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의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41절).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요청해서 구운 생선을 드셨습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자신의 실체적 부활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구운 생선’은 오늘날에도 우리 삶 속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심을 아시고, 때로는 우리가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십니다.
어떤 믿지 않는 사람이 계속되는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전도자가 사업체를 방문해 예수를 믿으라고 권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는 “만약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단 10퍼센트라도 이익이 있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날 마감할 때 하나님은 정확히 10퍼센트의 이익을 나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교회를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대의 ‘구운 생선’입니다.
이민생활에 지쳐 낙심한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민 와서 되는 것이 없을까”라고 절망하던 중, 달라스 외곽 인력시장길을 운전하며 지나게 됩니다.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나 일을 잘할 수 있습니다”라고 어설픈 영어로 외치는 멕시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면서 낙심했던 자신을 회개하고, 새로운 관점을 얻었습니다. 인력시장의 인부들이 구운 생선이 된 것입니다.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주시는 구운 생선의 향기는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 넓게 퍼져 있습니다. 우연한 만남, 예상치 못한 작은 기쁨, 위기 속의 평안, 고통 중의 위로로 나타납니다. 지난주가 부활절이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지금도 영원히 살아계시듯 우리를 향한 사랑도 영원합니다. 의심이 우리의 믿음과 삶을 흔들 때에 주님은 외면하지 않고 구운 생선을 잡수십니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는 구운 생선의 향기가 퍼져 있습니다.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믿음의 감각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의심의 안개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침묵 속에서도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 감수성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의심이 오히려 주님을 만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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