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4 F
Dallas
목요일, 4월 3, 2025
spot_img

[방삼석 목사] 배타적 경쟁적 유일신론과 삼위일체

방삼석 목사
달라스 뉴라이프 선교교회담임
Central Seminary 조직신학 겸임교수
[email protected]

사람들은‘신 (神)’, ‘하느님’ 또는 ‘하나님’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합니다.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사람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한국 기독교인들은 초기부터 ‘하느님’보다는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해 왔습니다. 구약성경은 엘로힘(Elohim)이라는 일반명사를 자주 사용합니다.
신약성경도 여전히 데오스(theos)라는 보통명사를 사용합니다. 모슬렘들이 사용하는 ‘알라’(Allah)도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입니다.
아랍어 성경은 ‘allah’를 보통명사처럼 사용합니다. 그러나,아랍어를 사용하는 기독교인들의 ‘알라’와 모슬렘들의 ‘알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모슬렘들은 이 용어를 구약의 여호와와 마호메트의 유일신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반면, 기독교인들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키는데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는 말레이시아의 모슬렘들이 기독교인들에게 ‘알라’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격하게 항의했던 이유입니다.(국민일보, 2013, 01, 28)

◈여호와와 알라는 같은 하나님?
예일대학의 미로슬라브 볼프는 그의 저서 Allah: A Christian Response(2011)를 통해 모슬렘들과 기독교인들이 예배하는 신은 동일하다는 과감한 주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볼프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은 모든 것으로부터 초월해 계시며, 선하시고, 그분을 향한 사랑과 이웃사랑을 명하신다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된 내용들은 기독교와 이슬람뿐만 아니라, ‘신’ 또는 ‘하느님’, ‘하나님’ 그리고‘알라’와 같은 일반명사를 사용하는 어느 종교라도 공유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볼프는 “그리스도 교회가 하나님이라고 칭하는 또 하나님으로서 선포하는 그는 따라서 성서의 증언에 의하면 스스로를 계시한 하
나님은 파괴되지 않은 통일성에서 동일한 분이시며 그러나 또한 파괴되지 않은 상이성에서 세 번 다르게 있는 그 동일한 분이라는 명제”(바르트 ‘교회교의학’)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경쟁적 다신론안에서 배타적 유일신론
기독교와 이스라엘의 대립을 중재하려 한 볼프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경쟁적 다신론과 배타적 유일신론이만나는 지점입니다.
이슬람 유일신 신앙은 부족 통합의 토대가 되는 신들의 경쟁관계 속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부족 신들보다 가장 높은 최고의 신개념과 같은 경쟁적 유일신론이었습니다. ‘알라’는 다른 많은 신들 보다 최고의 능력을 가진 최고의 신으로서 다른 모든 부족신들은 가짜가 되는 유일신입니다.
가나안에도 다양한 부족 신들이 있었습니다. 신들 간의 경쟁이 곧 부족들 간의 경쟁이고, 승리는 곧 제일 힘센 신을 섬기는부족의 몫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대의 다신론적 세계에서 유일신론의 문제는 “어느 신이 과연 충성과 섬김을 받을 만한가를 결정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스탠리 그렌츠 ‘조직
신학’). 이런 점에서, 구약성경의 전쟁하시는 하나님, 승리하시는 하나님, 심판하고 벌주는 하나님의 이미지도 경쟁하는 신들에 대한 고대 신관의 틀(일반적 신 개념) 안에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최고의 유일신은 전쟁에서 승리한 가장 강한신이어야 했기 때문에, 구약성경의 하나님은 아주 잔인한 분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고대 근동의 유일신론은 신명기 6장의 쉐마 기도문을 암송하던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의 과격한 민족주의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삼위일체의 역설
삼위일체 신앙고백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고백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일과 삼에관한 형이상학적 사변으로부터 추론된 교리가 아닙니다. 삼위일체 신앙고백은 고대로부터 예배와 송영의 체계이고 용어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신성은 경쟁적 다신론안에 자리 잡은 배타적 유일신론의 토대 위에 있는 유대인에게도, 헬라인에게도, 아랍인들에게도 신성모독이고 꺼리는 것이었습니다(고전 1:23). 지혜와 능력과 힘을 미덕으로 여기는 고전적, 경쟁적, 군주론적인 유일신론안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신성은 결코 Yes가 될 수 없었습니다.
유일신론 사회나 다신론 사회나 사람들은 모든 신들 위의 신이시고 전쟁에 가장 능하신 ‘알라’ 또는 ‘전능하신 하나님, 엘엘리욘’을 갈망합니다. 2차 대전 때 히틀러의 하나님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며 부활절 예배에 참여한 푸틴의 모습들과 어울리는 신론이지요.
그러나,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참으로 한 분 유일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다신론적 사회에서 힘과 권력의 하나님이 되거나 유일신론적 사회에서 군주적 배타적인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은 영원토록 삼위가 상호 내재를 통하여 하나이신분이십니다.
칼빈이 역설한 바와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 하나님이시나 성자는 성부가 아니며 성령 또한 성자가 아니며 그들 각자는 서로가 어떤 특성에 의하여 구별” (칼빈‘기독교강’)되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될 때, 거기에는 유대인도 헬라인도 종도 자유자도 남자도 여자도 모두 하나가 됩니다(갈 3:28).
그러므로, 경쟁적 배타적 유일신론이 아닌 삼위일체적 유일신론을 고백하는 뿌리 깊은 기독교 신앙 전통에 다시 숨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이 삼위일체야말로, 그것이 존재론적이든, 경륜적이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한1서 4:8)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며, 악에대한 철저한 심판과 이웃사랑에 대한 가장 강력한 요구가 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삼위일체를 포기하고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 윤리란 있을 수 없습니다.

최근 기사

이메일 뉴스 구독

* indicates requ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