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6:10-11)
미국 표준성경을 보면, “조금의 잠, 조금의 졸음, 눕기 위해 조금 손을 모으자”(A little sleep, a little slumber, a little folding of the hands to sleep-NASB)로 되어 있습니다. 앞 절에서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는 책망의 말을 들으면서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연발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모른다는 것은 이미 잠에 취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몽롱한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롬13:11)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몽롱한 상태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벌써”, 이미 시간이 지났습니다. 잠에서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움직여야 할 시간이 지난 것입니다.
① 우리는 육체적인 잠에 취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소파에 드러누워 빈둥거리거나 꼼짝달싹도 안하고 잠자는 이유를 그럴 뜻하게 변명합니다. 잠을 잘 자야 창의력 향상에 좋고, 기억력이 증가 되고, 집중력이 향상 되어 일을 잘 할 수 있고, 에너지도 충전 되고, 미용 효과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만 더’ 잔다는 것은 기본적인 수면(睡眠) 시간을 줄이라는 말이 아니라 지나친 태만한 태도, 시간의 낭비를 책망하는 것입니다. 게으름의 소치(所致)로서 잠자리에서 딩구르며 뭉개는 것은, 말씀처럼 빈궁(貧窮)이 강도처럼 몰려와서 행복을 빼앗아가며, 곤핍(困乏)이 군사처럼 쳐들어와서 가정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② 우리는 정신적으로 취한 상태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정신 차례, 임마!’라며 머리를 쥐어박을 때가 있습니다. 정신 줄을 놓고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을 책망하는 말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어떤 것에 현혹되어, 또는 잘못된 이론과 사상에 사로잡혀서, 이단 가르침에 빠져서 정상적인 인간의 삶과 길을 걷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가득히 들어 있는 잡귀(雜鬼)들을 쫓아내서라도 정신이 온전해져야 합니다((막5:15).
③ 우리는 영적으로 잠자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롬13:11)는 것은 구원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말이며, 종말의 시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코로나 팬데믹(pandemic) 현상을 보면서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눅21:35)는 말씀이 실감이 나며, 성경 말씀의 실현성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는”(눅21:34) 세속화에 빠져있거나,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계3:17)는 착각에 빠지거나, 주님은 더디 오신다(마25:5)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잠에서 깨어나 긴박성(緊迫性)과 긴장감(緊張感)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내가 받은 사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달려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