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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12월 11, 2024

[안지영 목사] 교회용 제자냐? 하나님 나라의 제자냐?

안지영 목사(나눔교회 원로목사)
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부교수

나와 내 가족은 과하티케 부족의 움볼디 마을에 들어가서 16년을 지냈습니다. 그때 큰 아이가 4살, 둘째가 태어난 지 6개월쯤 되었던 때였지요. 아이들에게 그곳은 어렸을 적 추억이 담겨있는 고향과 같습니다. 과하티케 부족은 그들의 언어로 된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성경번역을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자를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면서, 그들 중에서 함께 사역할 친구들을 만나서 신약 번역을 해서 2000년 6월 10일 하나님께 봉헌하는데 13년이 걸렸지요. 그리고 난 후 이렇게 함께 했던 친구들이 주변 이웃 부족의 언어로 성경번역을 위해 네 명이 헌신했고, 두 명은 문자 교육을 위해 헌신하여 총 여섯 명이 내가 떠난 2002년 이후 지금까지 그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두 친구가 세상을 떠나 주님께 갔지만, 여전히 사역은 진행되고 있답니다.
내가 그들과 함께 성경번역을 하는 동안에 그들은 주님을 알게 되었고, 성경번역과 문자교육 사역에 헌신하게 되었지요. 사실 이들은 나를 만나기 전에 주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천주교회에 속해 있었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기독교 신앙은 그들의 토속 신앙과 혼합되어 겉모습만 기독교이지 실제로는 그들의 토속 신앙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요.
이들이 마을 천주교회의 리더였는데, 미사를 공용어로 된 지침서에 따라 인도하고 있었지만 그 내용의 뜻을 이해할 수 없어서, 자기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줄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고 자기들끼리 얘기하곤 했는데, 내가 왔다는 거지요. 그래서 나는 이 사람들과 함께 성경을 번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부족이라는 확신과 함께 말입니다.
이들과 함께 공용어 성경을 가지고 다음 주 예배 때 사용할 성경 본문을 미리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들과의 성경공부 또한 내가 그동안 해왔던 방식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을 하게 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건지 안내하는 방식으로 진행을 했었지요. 이렇게 하면서, 그동안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던 그들은 비로소 성경 말씀에 눈을 뜨게 된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 말씀을 가지고 주일 미사 때 설교를 하는 것은 다른 거였습니다. 이틀 전에 그렇게도 무릎을 치며 좋아했던 내용은 어디로 가고 완전히 엉뚱한 애기로 설교를 채우더군요. 그러면서도 얼마나 잘했는지 인정을 받고 싶은 그들의 표정을 무시할 수가 없었지요. 무조건 칭찬을 하면서 다음 주일 설교 본문을 준비하는 모임을 지속적으로 가졌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설교해 주길 부탁하더군요. 자기들은 실력이 안되다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내가 설교하는 대신 너희가 설교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설득해서 나는 그곳 마을에 정착하는 첫 주일에 설교한 것 외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 마을을 떠나고 난 후에 설교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성경공부가 우리가 떠나는 그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성경 본문을 읽어야 할 지 우왕좌왕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 해석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에 점점 익숙해져 가더군요. 이런 과정 중에 그들은 자기들의 말로 성경번역을 했던 겁니다.
언젠가부터는 주일 예배 설교 본문을 자기들 스스로 준비하기 시작하더군요. 성경번역을 위한 성경공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우리는 매일 모여서 말씀을 가지고 토론을 하고 그에 따른 번역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번역 작업에만 몰두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의 의미를 찾아내고는 그 말씀의 뜻을 어떻게 자기들 삶에 적용할 것인 지를 진지하게 나눴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나의 삶의 서툰 영역들을 그대로 가감없이 나누기도 하고, 어떨 때는 그들에게 들키기도(?) 했지요. 그들에게 선교사는 자기들과는 결이 다른 존재라고 여겼는데, 한국에서 온 나를 보고서는 선교사에 대한 그동안의 고정관념이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아, 선교사도 우리와 똑 같은 부족한 인간이구나”라고 말이지요. 이렇게 말씀과 삶의 적용은 내가 어디에 가든지 지켜낸 성경공부의 기본 틀이었습니다. 말씀 적용을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의 부족함을 볼 수 없고, 예수님의 은혜를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현지인 사역자들이 헌신하여 다른 부족의 언어로 성경번역을 한다는 것이 당시 파푸아뉴기니 성경번역 역사 중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현지인이 선교사와 신약성경을 번역하고서 구약성경을 현지인 사역자들이 넘겨받게 되지요. 다른 부족의 언어로 번역하는 경우는 그때까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나의 이런 사역에 듣고 찾아온 목회자들이, “그렇게 제자훈련을 시킨 매뉴얼이 있느냐? 성경공부 교재는 무엇을 썼느냐? 있으면 자기들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매뉴얼과 성경공부 교재가 없었지요. 교재는 성경이었고, 매뉴얼은 그들과 함께 마을에서, 그리고 선교부에서 가족으로 지내면서 말씀 공부하는 방식을 저절로 습득하도록 안내했던 것이 다였지요. 그리고 그 배운 바를 어떻게 적용하고 기도하는 지를 서로 지지고 볶으면서 일상 중에 저절로 터득할 수 있도록 도운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내가 아이들 야단 치는 게 과도하다고 여기면, 한 친구가 나를 지적합니다. “우리가 성경공부 때 자녀들을 화나게 하지 말자고 해놓고, 왜 아이를 화나게 만드냐?” 이런 식이었지요.
나의 목표는, ‘저들이 내가 복음을 이해하는 만큼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였습니다. 저들은 자기들의 세계관으로 기독교를 보기 때문에 변질된 기독교 신앙관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나도 제대로 이해한다고는 말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만큼은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지요. 다른 누구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게 내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들과 함께 있었던 16년이 되가면서 어느덧 그들도 내가 아는 복음을 그들의 것으로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네요. 그들과 함께 지지고 볶으면서 산 16년이 어느 새 우리 모두의 마음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더군요.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흔적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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