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 플라워마운드교회 담임목사
– 침례신학대학교 (B.A. and M.Div.)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M.A. and Ph.D 수학)
– 싸우스웨스턴 신학대학원 (Ph.D Cand. In Old Testament)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는 다른 배경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지리적 위치의 차이에 따른 기후와 풍토는 물론이고 문화적으로도 많이 다른 배경에서 기록된 것이지요. 성경이 처음 기록될 때 독자들은 같은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이었으므로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를 오해 없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천 년이 지난 이후 다른 환경에서 사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는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오해의 소지가 작은 부분에 한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오해 없이 성경의 이야기를 이해한다면 더 깊은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문화적 배경의 무지에서 비롯되는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가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다 허벅지 관절을 맞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씨름한 대상은 누구였을까요? 호세아서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호 12:3)” 야곱이 힘으로 하나님과 겨루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는 사람과 함께 씨름도 하시다가 힘이 부족하셔서 자칫 질 것 같으시면 허벅지 관절을 쳐서라도 이기시는 그런 분으로 묘사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하나님과 관련된 씨름 이야기가 야곱과 관련해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 역시 하나님과 관련된 씨름을 했습니다. 창세기 30장 8절은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고 합니다.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겨 아들을 낳았는데 납달리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납달리라는 단어가 바로 씨름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즉, 언니와 씨름하여 이겨서 낳은 아들이라서 씨름이라고 이름을 준 것이지요.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언니와 크게 경쟁했다’고 번역한 부분입니다. 한국어 성경 번역은 영어 번역의 전통을 참고하여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어 성경(ESV)은 이 부분을 ‘with mighty wrestlings’라고 번역했습니다. 한국어로 ‘크게’, 영어로 ‘with mighty’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엘로힘”입니다.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이 없는 분들도 어느 정도 신앙생활 하신 분들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하나님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씨름이라는 단어와 하나님을 지칭하는 엘로힘이라는 두 단어 사이는 소유 의미를 주로 나타내는 연계형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문자적인 번역을 하자면 “하나님의 씨름으로”라는 의미이지요. 그러니까 창세기 30장 8절에 기록된 라헬의 고백은 사실 “하나님의 씨름으로 내가 언니를 이겼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이 씨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지요. 바로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하듯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역 성경은 이 부분을 잘 이해하여 의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내가 언니를 이겼다”라고 번역한 것이지요.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씨름했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안다리, 바깥다리를 걸어 넘기는 씨름을 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얍복 강조차 낮에 건너지 못하고 밤잠 이루지 못하다가 한밤중에 건너기를 선택해야 할 정도로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던 야곱이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하듯 간절히 기도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허벅지 관절을 쳤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께서 간절히 자신을 붙들고 기도하는 야곱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 허벅지 관절을 치신 것일까요? 오늘날 우리가 맹세할 때,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듯 당시의 사람들은 맹세할 때 허벅지 관절에 손을 대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 떠나며 맹세할 때, 아브라함의 허벅지 관절 아래 손을 넣고 맹세했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씨름하며 그의 허벅지 관절에 손을 대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야곱 사이에 맹세와 같이 맺으신 언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도망하던 중, 멈추어선 한 곳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고 약속하셨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하듯 진땀을 빼며 기도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그의 허벅지 관절을 치심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것을 생각나게 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20년 전 벧엘에서 야곱 역시 하나님께 서원을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짓고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서원이었습니다.
야곱은 에서와의 만남만을 생각하며 전전긍긍하고 하나님을 붙들고 살길을 찾아 요구하며 씨름하듯 기도했지만, 정작 하나님의 관심은 그와 맺은 언약과 그의 서원에 있었습니다. 에서와 같은 나를 위협하는 문제가 있더라도, 그 문제는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언제든 쉽게 해결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에서의 문제를 붙들고 울부짖는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심으로 눈앞의 현실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과의 언약의 문제를 기억하게 하신 것이지요. 눈앞의 문제보다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삶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