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우주에 지적 생명체는 정말 우리뿐일까? 오랫동안 궁금해 왔지만 어쩌면 영원히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미생물조차 생존하기 어려운 우주 환경을 생각하면 지구 밖에서 사람 같은 생명체를 기대하는 것은 꿈같은 일인 듯도 하다. 그러나 인간의 지적 한계를 넘어서는 우주의 크기를 고려하면 아주 허황된 상상은 아닐 수도 있다.
소설이나 영화에 나온 외계인을 보면 우리가 가진 우주에 대한 관념부터 과학 지식, 인류를 이해하는 철학까지 다양한 우리의 모습을 재확인하게 된다.
80년대에 한국에서도 꽤 인기를 끌었던 V(브이)라는 미국 드라마 시리즈가 있었다. 파충류를 닮은 흉측한 외계인에 맞서 지구와 인류를 보호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90년대까지도 비슷한 이야기는 이어진다. 미국식 영웅주의로 잘 포장된 인디펜던스 데이에는 거대한 우주선을 몰고 와 지구를 침공하려는 외계인과 이를 성공적으로 저지하는 미군과 미국 대통령이 등장한다. 잘 만든 B급 영화로 회자되는 스타쉽 트루퍼스도 벌레를 닮은 외계 생명체를 무찌르는 이야기다. 모두 인류와 외계 생명체를 선과 악이라는 간단한 구조 속에 배치한 이야기들이다.
1997년에 나온 영화 콘택트는 외계 생명체를 바라보는 관점을 획기적으로 바꾼 작품이다. 어릴 때부터 지구 밖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탐구하며 그들이 우리에게 접속해오기를 기다리는 과학자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과학의 대중화에 큰 업적을 남긴 칼 세이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영화는 소설에 비해 극적 장치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외계인이 등장하지 않는 외계인 영화라는 점이 독특하다. 우리가 외계인의 존재를 바라보는 방식, 그들과 우리의 기술 수준의 차이, 그리고 더 나아가 외계인의 존재와 종교가 양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잔잔한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인 내용이다.
영화 어라이벌(2016년)은 필자에게 가장 큰 여운을 남긴 외계인 영화다.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의 소통과 언어에 관한 내용이다.
언어학에는 사피어-워프 가설이 있다. 인간이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식은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에 영향을 받는다는 가설이다. 여러 개의 언어를 배우고 써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한국어의 높임말은 사용자로 하여금 인간관계의 상하질서를 명확히 규정하게 하도록 요구한다. 반대로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는 과도한 친절이나 일방적 배려보다는 상호존중이나 개인주의적 행동 양식이 스스럼없이 통용된다.
영화 어라이벌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우리와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언어에는 시제가 없다. 즉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없다. 물론 영화적 상상력에 의한 설정이지만, 인간의 언어에서는 불가능한 특성이다. 영화 속 외계인은 시제로 구분된 시간개념에 제한을 받지 않고, 인간이 미래로 구분하고 있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건조차도 현재에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 인간의 문자가 대부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쓰여지는 것도 시간의 일차원적 흐름과 유사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영화 속 외계인의 문자는 시작과 끝이 없는 원형이며 이것은 그들이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음을 뜻한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빛의 속도로 달려도 수백 년이 걸리는 거리를 날아서 지구에 왔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언어적 특성과 그 결과 나타나는 시간 인식 방식을 한 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되는 꽤 괜찮은 영화다.
요사이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가 인기다. 드라마 속 외계인인 삼체인들이 지구로 보낸 ‘지자’ (영어로는 sophon)는 비록 실제 물리학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입자지만 시청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우 흥미로운 존재다. 아직 실험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물리학 이론의 종착지라 할만한 초끈 이론에 따르면 세상은 11차원으로 되어 있는데, 드라마에서 삼체인은 양성자가 가지는 총 11차원 중 9차원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 이를 이용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양성자를 만들었고 이를 지자 (sophon)라고 부른다.
지자를 양자얽힘으로 묶인 쌍으로 만들어 통신에 사용하는 설정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이는 실제로 연구되고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양성자처럼 아주 작은 두 개의 입자가 양자얽힘으로 묶이면 각 입자는 서로 반대 방향의 스핀을 가진다. 각각 반대방향으로 회전한다고 보아도 좋다. 만약 한 입자의 스핀 방향을 알면 양자얽힘을 가진 다른 입자의 스핀 방향도 자동으로 알게 된다. 이는 두 입자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를 이용해 아주 먼 거리 사이에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것을 드라마 삼체에서 이용한 것이 지자를 이용한 통신이며 이론적으로는 정보가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이동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통신은 양자의 스핀을 우리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을 때 가능한데, 통신에 사용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실제로 스핀의 방향은 우리가 관측하기 전까지는 확률적으로만 존재하고 관측하는 즉시 하나의 방향으로 결정 난다. 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도 끝까지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이다.
드라마 삼체는 비록 지구를 공격하려는 외계인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양자역학, 나노기술, 상대성 이론 등 인류가 알아낸 다양한 과학기술을 확인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과거에는 단편적인 악으로 그려졌던 외계인이 이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깊이 이해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인간과 우주, 과학을 이해하는데 성숙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