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1 F
Dallas
토요일, 7월 12, 2025
spot_img

[최승민 목사] 힌놈 골짜기가 지옥이라고?

최승민 목사 플라워마운드 교회 동역목사

배경과 더불어 읽는 성경(17)

‘지옥’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십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옥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과 불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혼합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말 지옥(地獄)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교에서 사용하던 용어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독교가 전해지기 이전에 사용되던 용어를 문화적 차원에서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였지만, 그 기본적인 개념은 엄연히 다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아비지옥(阿鼻地獄), 무간지옥(無間地獄)을 비롯한 팔열지옥(八熱地獄)의 개념은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적 세계관에서 지옥은 어떤 이미지일까요? 구약성경에 종종 등장하는 ‘힌놈 골짜기’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의 서편에서 시작하여 남편을 돌며 형성된 골짜기 입니다. 예루살렘 성의 동편에는 기드론 골짜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기드론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서편에는 예루살렘 성이, 동편에는 감람산 혹은 올리브산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지요.
힌놈 골짜기는 기드론 골짜기를 만나는 곳에서 끝납니다.
그리고 기드론 골짜기는 사해에 이르기까지 광야를 굽이치며 형성되어 있습니다. 지옥에 관한 이야기에서 갑작스럽게 골짜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고대 이스라엘 땅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지옥은 힌놈 골짜기와 같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힌놈 골짜기는 ‘힌놈의 골짜기(느 11:30)’ 혹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렘 19:2)’라는 명칭으로 성경에 등장합니다. 바알의 우상을 만들어 두고 분향하는 장소이기도 했고, 암몬 족속의 신 ‘몰렉’을 위한 산당을 짓고 어린 자녀들을 산 채로 불살라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했습니다(렘 7:31-34).
요시야 왕이 종교 개혁을 단행한 이후, 힌놈 골짜기는 이방인의 무덤과 쓰레기 소각장으로 쓰였습니다.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를 수 없는 무연고 시신 혹은 부정한 질병으로 죽어 정상적인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시신들이 힌놈 골짜기에 버려져 태워지기도 하고 또 자연 부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고대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사람들은 ‘힌놈 골짜기’하면 자연스럽게 가지는 이미지가 사람을 산 채로 불태우기도 하고, 쓰레기도 태우고 시신도 부패하고 있는 냄새나고 으슥한, 즉 특별한 일이 없으면 모두가 가기 꺼리는그런 지역이었습니다.
힌놈 골짜기라고 할 때, 골짜기는 히브리어로 ‘가이(גיא)’라고 합니다. 힌놈은 그대로 음역한 것임으로, 힌놈 골짜기 자체를 히브리어로 발음 한다면, ‘가이 힌놈(גיא הינום)’이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지옥을 지칭할 때, “게헨나(γέεννα)”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가이 힌놈”의 헬라어 음역입니다. 즉, 고대 팔레스타인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지옥이라는 말을 들을 때, 땅(地)속에 있는 감옥(獄)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힌놈의 골짜기를 떠올렸다는 것이지요.
지옥을 지칭하는 “게헨나”라는 용어는 팔레스타인의 지형과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옥이라는 개념에 대해 지칭하며 말씀하실 때, “게헨나”라는 용어를 쓰셨던 것 같습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말 가운데 이 표현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3)” 두 손을 가지고 힌놈 골짜기에 가는 것보다 온전치 않은 몸으로라도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지옥을 힌놈 골짜기에 빗대어 말하는 방식은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유대인들에게는 지옥이 어떤 곳인지를 떠올리게 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 땅에 살아 예루살렘 주변의 힌놈 골짜기가 어떤 장소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음역어’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신서에서는 “게헨나”라는 표현이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옥 개념을 설명할 때, “음부” 혹은 “불못”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우리말 성경에 “음부”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하데스(ἅδης)’로서 고전 그리스 문화에서 사후 세계를 가리키는 용어로 폭넓게 사용되는 표현이었습니다. “불못”은 말 그대로 불로 이루어진 호수를 지칭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지리와 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지옥의 개념을 언급할 때는 이러한 표현들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에는 놀라운 장면이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성전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계시하시기 위해 힌놈 골짜기에 위치한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 일반적으로 말씀하시는 성전이라는 거룩한 자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지옥의 이미지를 가져올 만큼 끔찍한 장소였던 힌놈 골짜기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장소에서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지옥과 같은 장소에도 임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지옥과 같은 삶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 때도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어디에 있든지 나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삶 사시길 축복합니다.

최근 기사

이메일 뉴스 구독

* indicates requ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