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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월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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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재 교수] 하품의 목적

전동재 박사 UT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콜레스테롤 대사관련 질병을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현재 Dallas Baptist University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에게 생명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더운 날 아이스크림처럼 우리 입에 즐거운 것이 또 있을까?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몇 번 베어 물고 나면 곧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와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른바 아이스크림 두통 혹은 Brain Freezing 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아이스크림의 차가운 기운이 입 천장과 구강 안쪽의 혈관을 수축시켰다가 빠르게 이완시키는 과정에 의해 촉발된다. 이러한 변화는 공교롭게도 구강 혈관 주변에 분포 되어 있는 삼차신경 (Trigeminal nerve)을 건드려 자극하기 때문에 두통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냉각 자극이 구강에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을 머리에서 발생한 두통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의학에서는 자극이 시작된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통증을 느끼는 현상을 연관통증 (Referred Pain) 이라고 말한다. 신경 입장에서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속담처럼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는 경우라 비유할 수 있겠다. 심장질환인 심근경색 초기에 멀쩡한 치아나 턱이 아파오는 경우가 잘 알려진 연관통증의 예다. 아이스크림 두통도 구강에서 시작된 자극인데 멀쩡한 머리의 통증으로 끝나기 때문에 연관통증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뇌는 구조적으로 구강 안쪽과 인접해 있으며 구강의 온도 변화에 민감하다. 하품의 목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람뿐만 아니라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심지어 어류까지 거의 모든 척추 동물들이 하품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품을 왜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히포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긴 역사를 가진다. 최근에는 하품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까지 생겨났는데 바위나 땅이 깊게 갈라진 폭넓은 틈을 뜻하는 “Chasm”에 학문 분야를 뜻하는 “ology” 가 합쳐져 캐스몰로지(Chasmology)라고 부른다. 다만 여기서 폭넓게 갈라지는 것은 지형에 해당되는 땅이 아닌 우리 몸의 구강이다.

“하품의 신비”라는 책에서 “하품의 제1법칙”이라고 정의한 내용을 보면 하품은 1) 사람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거나, 2)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렇듯 어느 문화든지 전통적으로 하품은 무관심, 피곤함 내지는 지루함을 상징하는 제스처로 여겨진다. 당신이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데 누군가 앞에서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쩍 벌리고(Chasm) 하품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남의 구강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원치 않는 볼거리는 둘째 치고 당신이 말하는 내용이 지루하다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에 보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언짢을 수 있다. 하품이 항상 지루함의 표시는 아님에도 말이다.

인간은 태아 20주부터 하품을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품은 가슴에 있는 흉부 근육들, 횡경막, 목 안의 기도, 입 안의 입 천장 등이 조직적으로 동원되어 일어나는 매우 복잡한 현상이다. 늑간근은 이완되고 횡경막은 반대로 수축되면서 숨을 들이 마시는 것으로 시작하여 턱관절이 최대한 내려오면서 동시에 기도가 최대로 열리게 된다. 이 정점의 순간 짧은 호흡 정지 상태가 일어나고 곧 빠르게 숨을 내뱉는 것으로 하품은 마무리 된다.모두가 경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품할 때 눈을 찡그리게 되면서 눈물선이 자극되고 안구에 촉촉한 눈물이 고이게 되는 것도 하품의 결과이다.

하품의 목적은 무엇일까? 여러 가설이 있었지만 하품은 뇌를 식히는 메커니즘이라는 가설이 가장 설득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2014년 Physiology & Behavior에 실린 Andrew Gallup 박사의 논문은 하품을 두가지 기능으로 나눠 설명했다. 첫째는 긴 호흡을 통해 외부의 시원한 공기를 구강과 폐에 유입시키는 것과 둘째는 턱이 벌어지면서 뇌로 들어가는 혈류량을 늘려주어 뇌를 식힌다는 것이다. 밤에 잠들기 전에 하품을 많이 하는 이유도 그 때 체온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겨울철 보다 여름철에 하품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여름철에 더워진 뇌를 식히려는 메커니즘이 활발히 일어나는 것으로 해석된다. 흥미로운 점은 여름철 이라도 만약 외부 온도가 체온을 초과하게 될 경우 하품의 횟수는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뇌가 아무리 더워도 외부의 온도가 뇌를 식혀줄 만큼 차갑지 못할 경우 하품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2022년 국제 학술지 ‘뇌’에 발표된 영국 MRC 연구소 논문은 뇌의 중심 온도가 체온보다 평균 섭씨2도 정도 높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뇌가 평소 쉽게 “열받고” 있음을 제시했다. 이는 뇌의 온도가 체온과 동일할 것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결과였다. 뇌는 우리 몸에서 2%의 무게에 불과하지만 중앙처리장치로서 소비하는 에너지는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기관이기에 뇌 속 온도가 높다는 것은 어쩌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연구 결과는 뇌를 식힐 수 있는 주요 메커니즘으로서 하품을 더욱 부각시키는 결과이기도 하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하품을 통해 머리를 차갑게 하는 그 일만큼은 이미 하고 있는 셈이다. 하품을 지루함의 제스처로만 볼 것이 아니라 더워진 뇌를 식혀 깨우려는 반응으로 보되 하품할 때 입을 가리는 매너만큼은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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