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전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만나주시고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배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예배가 살아나면 교회가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나면 가정이 회복되며, 개인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경 속에도 이러한 예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장면이 여러 곳에 등장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낙성 예배를 드렸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사르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차 제사장들도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대하 7:1-2). 그곳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장소였고, 그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 가운데 영원히 거하시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이처럼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불러오며, 백성에게 복을 선포하는 시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통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예수님도 어린 시절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율법 교사들과 교제하셨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찾아 헤맬 때,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배의 자리, 성전의 자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온전한 신앙생활은 반드시 교회 생활과 예배 생활이 분명해야 합니다.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신앙의 생명줄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떠나서는 결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땅의 수많은 민족들이 자신들의 신을 세우고, 정성을 다하며 번영을 이루어보려 하였지만, 그 끝은 허망함뿐이었습니다. 러시아도 한때는 복음을 받아들인 나라였습니다. 정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했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공산화가 진행되면서 교회가 폐쇄되고, 예배가 무너졌으며, 결국 하나님을 떠난 땅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러시아는 경제적, 사회적, 영적 모든 영역에서 피폐함을 경험하였습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떠난 결과는 분명히 나타납니다. 사사기 시대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 때마다 주변 민족에게 침략을 당하고,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예배로 돌아갈 때마다 사사들을 세우셔서 구원하시고,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이는 예배가 회복될 때 민족도 회복된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오늘날 북한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떠나 인간을 신격화하며, 김일성을 신으로 섬기는 그 체제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 없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제의 충신이 오늘의 역적이 되고, 권력 유지를 위한 숙청이 끊이지 않으며, 백성들은 굶주림 속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전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난의 행군’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생명이 죽어갔습니다. 이는 하나님 없이 세워진 체제가 얼마나 허망하고 참담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줍니다.
영국과 유럽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때는 복음의 중심지였고, 수많은 선교사를 파송했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세속주의와 인본주의가 교회를 잠식하면서, 예배가 무너지고 성도들이 흩어졌습니다. 오늘날 유럽의 많은 교회들이 관광지나 박물관으로 전락하고,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잃은 그곳에는 복도, 영광도 함께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예배의 존재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권세와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예배적 교제가 끊기자, 그는 에덴에서 쫓겨났고, 삶에 저주가 임했습니다.
인생의 참된 복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유지하는 데 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 쫓겨다니는 중에도 “내 영혼이 여호와를 갈망하나이다”(시 42:1)라고 고백하며 예배의 중심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 칭함 받은 이유도 예배를 생명처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을 배격하고, 자신이 중심이 되어 살아가고자 하는 인생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의 관계가 단절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무너지게 됩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창세로부터 계획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기 때문에, 인생은 방향을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배가 살아나면 인생의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됩니다.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는 더욱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뜻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단지 형식적인 순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교제가 이루어지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예배는 권세입니다. 예배는 능력입니다. 예배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소홀히 하며 다른 어떤 일을 많이 한다 해도, 그것은 열매 없는 수고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권세와 능력을 주시고, 이 땅을 다스리도록 명하셨습니다. 그 권세는 예배를 통해 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성공한 개인, 예배를 중시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교의 중심이 됩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고백한 것도,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예배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종말의 시대를 통과하며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것은 신앙의 본질, 곧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교회를 붙들고, 예배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삶,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자는 바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입니다(요 4:23). 예배가 살아날 때, 교회는 회복되고, 민족은 소생하며,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서 형통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