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삼석 목사(달라스 뉴라이프 선교교회)
신약성경에서 보듯이 초대교회 성도들이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마16:16)와 하나님(요20:28), 또는 하나님과 동등한 분(빌2:6)으로 믿었습니다. 비판적 역사가들이라도 이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유일신신앙을 생명처럼 지키는 유대인들로부터 이런 신앙고백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1) 예수님의 능력과 십자가의 죽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는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나고 자라셨습니다. 나사렛은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요1:46) 할 정도로 깡촌이었습니다. 반면에 십자가형은 로마에 반역을 일으킨 자들에게나 시행되던 끔찍한 형벌입니다. 그렇다면, 갈릴리 깡촌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 예수가 어떻게 십자가에 달릴 정도로 이스라엘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을까요? 성경이 묘사하는 특별한 표적과 기사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야말로, 예수님의 특별한 능력에 대한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로마에 위협적인 분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5:43-45). 말씀을 듣던 유대인들에게 첫 번째 원수, 곧 박해하는 자들은 당연히 로마인들과 그들의 하수인 노릇하는 세리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세리의 친구가 되기도 하셨지요(눅7:34). 예수님은 평화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유대인들의 외식적인 전통을 비판하기도 하셨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도 종종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막 2:5 & 눅 5:20).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믿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신성모독처럼 들렸지만(막 2:7 & 눅 5:21) 예수님은 자신이 다윗보다 크신 분이시고,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신 분이라고도 하셨습니다(마 22장, 요 8:58). 유대인들은 돌을 들어 예수를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신성에 관한 자기 증언도 뒤 따르는 능력과 표적이 없었다면, 미친 사람이나 사기꾼의 말처럼 취급당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능력으로 행하신 표적들이 그의 평화의 복음과 신성에 관한 자기 증언들을 권위 있는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 이러라”(요 5:18). 예수님은 끝까지 자기주장을 철회하지 않아 유대인들에게 버림받아 로마의 십자가에 죽게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에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던 가난한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그분의 놀라운 능력이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어집니다.
2) 저주받아 죽은 자를 신원하신 하나님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메시아로 높여지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기원후 71년 이후에 일어난 대 로마 항쟁도, 130년경에 시작된 바르코크바 항쟁도 모두 메시아 운동이었지만, 그 운동의 참혹한 패배 후에 ‘시므온 바 기오레’나 ‘시므온 벤 코크바’를 민족의 영웅으로 기념할망정, 메시아로 믿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분명 신성모독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처럼 보였습니다(신 21:23b).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를 참 메시아로, 참하나님으로 믿는 이들이 곧 생겨났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이방인들로부터 해방시키고 옛 성전의 영광을 다시 회복하는 사람으로 기대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의 손에 무참히 처형당하고, 이스라엘 성전을 여전히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의 손에 남겨 둔 예수는 메시아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이 그의 비참한 죽음 이후에 참 메시아로, 주와 하나님으로 고백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께“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요 20:28).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요엘서 2장의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의 성취라고 설교하며, 여호와의 이름(욜 2:32)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합니다(행 2:38). 바울은 이사야 45:23절의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는 말씀이“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빌 2:9-11) 하는 것으로 성취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주와 하나님으로 고백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이 곧바로 예수님의 신성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다고 그를 하나님으로 믿지는 않으니까요. 십자가에 죽었던 예수가 살아났다면 그것은 당연히 유대교의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그를 다시 살리신 것이죠(엡 1:17-20). 만일,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이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다시 살리셨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생전의 증언들이 신성 모독이 아니라, 참되다는 것을 하나님이 증명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이 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증거인 셈입니다. 그것이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이었던 유대인들이 유일신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서도 예수님을 주와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맞 물려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특별히 묵상하는 기간에, 우리의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신 것을 더욱 깊이 묵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