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워마운드교회 장년교육 담당 목사
“17 대 1”이라는 표현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1997년 개봉한 한국 영화 비트에서 주인공이 자기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사용했던 대사로, 이후 다른 영화 및 CF에서 패러디되면서 유명해진 표현이라고 합니다. 문화 미디어에서 확인되는 시초는 1997년이지만, 구두로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전설의 주먹 김두환을 정치 깡패 이정재가 17명과 함께 집단 폭행을 가한 사건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원이 어떻든 한 명의 영웅적 인물이 다수의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는 남자들의 철없는 시절 로망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열왕기상 18장에는 17 대 1보다 더 극적인 사건이 등장합니다. 850대 1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야 한 명과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팔백오십 명이 영적 전투를 벌인 것입니다. 일대 다수라는 전투의 형세에서 비롯되는 긴장감과 반전, 그리고 카타르시스는 동일하지만 싸움의 목적은 완전히 다릅니다. 17 대 1의 싸움이 혼자서 17명을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영웅적인 한 인간을 강조한다면, 850대 1의 싸움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싸움에 앞서 엘리야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 18:21)” 이것이 전투의 목적이었던 것이지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그 어느 신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영적으로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똑똑히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알에 마음이 끌리더라도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고 바알을 선택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에 어두워졌다니(롬 1:21)”라는 말씀으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를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을 보다 못한 엘리야 선지자가 나서서 누가 진정한 하나님인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엘리야 선지자와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간의 영적 전투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왜 갈멜 산을 전투의 장소로 정했을까요? 갈멜산은 팔레스타인에서 비옥한 지역 중 하나인 이스르엘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스르엘 골짜기는 석회암이 깍여져 토양을 이룬 테라로사를 비롯하여 농사를 짓기에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이 골짜기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꿈도 못 꾸는 농사를 지을 수 있었기에 남다른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르엘 골짜기라는 좋은 조건의 땅에서 살게 된 축복 때문에 바알 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요소가 하나님을 등지게 한 원인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농사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비(雨)입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처럼 중동 지역에 위치한 나라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의 중요성이 더 큽니다. 관개(灌漑)를 통해 물을 대는 것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이전에는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막상 가나안 땅을 차지하여 농사를 짓고 살려고 하니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 전쟁 중에 온전히 진멸하여 근절하지 못한 현지인들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노하우는 바알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바알은 비를 관장하는 풍우(風雨)의 신이었기에 그를 잘 섬겨야 제때 비를 내려주며 농사에서 좋은 수확을 거둘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이 사상에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에서 바알 숭배가 근절되지 못한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전쟁의 신이지 풍우의 신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여호와와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바알이라는 전문가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엘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알 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이스르엘 골짜기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갈멜산 꼭대기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불러 모읍니다. 이스르엘 골짜기를 앞에 두고 바알이 진정한 신인지, 여호와가 진정한 신인지를 겨루어 보자는 심산이었을 것입니다. 이 영적 전투를 통해 여호와가 진정한 하나님임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백성은 엎드려서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 18:39)”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바알의 선지자들을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도록 잡아 기손 시내로 내려가 죽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떠합니까? 엘리야 시대의 북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영역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전쟁의 신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방의 손에서 구원해 내시기도 하시나 동시에 비를 내리시고 멈추게도 하시는 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그 동일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 생활뿐만 아니라 가정과 자녀 양육, 그리고 직장 및 비즈니스에도 역사를 일으키시는 전능한 하나님이심을 믿고 의지하는 삶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