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말경, 물리학계를 열띤 논쟁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발생했다. 인터넷에 게재된 두 편의 논문으로 시작된 논란, 바로 초전도체 이야기다.
7월 22일, 논문 웹사이트 아카이브(arXiv.org)에 상온, 상압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논문 두 편이 올라왔다. 이 소식은 미국과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국내외 언론들이 취재에 뛰어들면서 해당 초전도체 개발 소식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LK-99으로 불리는 이 물질이 진짜 초전도체라면, 또 그것이 양산되어 산업에 쓰이게 된다면 전기, 전자, 에너지 분야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그 핑크빛 바램 때문일까? 인터넷에는 다소 억지스럽게 LK-99을 옹호하는 내용의 글과 유튜브 영상이 제법 보인다. 아직 최종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종합해보면 부정적 견해가 지배적이다.
초전도체가 무엇인지 간단히 훑어보자. 초전도체는 두 가지 특징적인 성질을 가지는 물질이다. 하나는 전기 저항이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완전반자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전선에 전압을 걸면 전자가 이동한다. 이때 전자는 전선을 이루는 물질의 원자에 부딪히며 이동하는데 이 충돌 때문에 전기적 저항이 생긴다. 그런데 어떤 물질은 매우 낮은 온도에서 이 저항이 사라진다. 물리학에서는 이것을 전자 쿠퍼쌍(Cooper pair)으로 설명하는데, 여기서는 전자의 이동이 극저온에서 매우 독특해지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초전도체의 두 번째 특징인 완전반자성은 완벽한 반자성을 뜻한다. 반자성을 가진 물질 주변에 자석을 가까이 가져가면 해당 물질이 자석을 밀어내는 자성을 가진다. 예컨대 자석 S극을 반자성 물질 가까이 가져가면 그 주변에 S극이 유도되어 자석을 밀어낸다. 물, 수은, 금, 은 등이 반자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효과가 약해서 정밀한 실험으로만 확인되고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초전도체는 완전반자성을 띤다. 외부 자기장과 비슷한 크기의 자성이 물질에 발생한다. 초전도체가 자석 위에 붕붕 떠 있는 영상이 바로 이 완전반자성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완전반자성 또한 특정 물질에서 온도가 매우 낮을 때 발생한다.
7월에 나온 LK-99 소개 논문에서 저자들은 상온, 상압, 즉 우리가 생활하는 일상적인 온도와 압력에서 이 새로운 물질이 초전도 현상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전문가들은 논문을 비판했다. 학술 논문의 요건에 미치지 않는 요소가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LK-99 제조법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중간 생성물을 5에서 20시간 가열한다고 되어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15시간이나 차이 나는 가열 시간을 제시하는 것은 학술 논문에 적절치 않다. 또 LK-99에 대한 측정 데이터가 7월 22일 동시에 나온 두 논문에 다른 값으로 나와 있는 것도 학자들이 불편해했던 부분이다. 완전반자성을 보여주는 실험에서도 LK-99시료가 완전히 공중부양하지는 못했다.
국내외 언론뿐 아니라 세계적인 학술지 Nature에서도 관련 기사와 평가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런 와중에도 해당 두 논문에 이름을 올린 이석배 박사와 김지훈 박사는 언론 인터뷰를 극도로 자제했다. 이해되는 측면이 없지는 않다. 두 사람 모두 퀀텀 에너지라는 회사 소속으로 논문에 기재되어 있고, 논문과 더불어 특허 출원이 진행 중인 점으로 미루어, 이들의 초전도체 개발은 학문적 성과보다는 해당 회사의 이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다. 아카이브에 논문을 올린 것이 모든 저자의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학계의 시선은 더 싸늘해졌다. 또한, 세계 여러 연구실에서 검증해본 결과, 상온, 상압에서 뚜렷한 초전도 현상은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나고 있다.
LK-99이 아니더라도 미래에 진짜 상온, 상압 초전도체가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까? 모든 전자, 전기 제품, 특히 자석이 사용되는 곳에는 일대 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전선을 통해 보내면 전선의 전기 저항 때문에 전력 손실이 발생한다. 이 손실을 줄이고자 전압을 높이고 전류를 낮추어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론상 상온, 상압 초전도체로 전선을 만들면 전력 손실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전 지구적 전기 공유 시스템을 꿈꿀 수 있다. 밤에는 태양광 발전을 할 수 없고, 바람이 없는 시간에는 풍력발전기를 돌릴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라도 지구의 절반은 태양 빛을 받고 있고, 어디선가는 바람이 불고 있다. 텍사스에서 태양광, 풍력으로 만든 전기를 유럽이나 아시아에 공급할 수 있다. 전선에서 전력손실이 없기 때문이다. 전선 연결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전 세계를 전선으로 연결해 본 경험이 있다. 인터넷을 위한 해저 케이블이 대서양, 태평양에 이미 즐비하다.
상온, 상압 초전도체가 만들어지면 초고용량 모터도 만들 수 있다. 모터 속에는 코일 전자석이 들어가는데, 코일을 초전도체로 만들면 전기 저항이 작아서 전자석의 자력은 커진다. 내연기관 엔진이 더 빨리 모터로 대체될 것이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이번 해프닝이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게 학계 관계자와 일반 대중 모두 실망하지 않고 계속 희망을 꿈꿨으면 좋겠다.